Random Thoughts/Law Like Love 2012. 8. 24. 12:11

확신과 신뢰

며칠 전에 민주당에서 김이수 사법연수원장을 헌법재판관에 추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분은 국회 추천몫이기 때문에 인사청문특위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한다.

사실 이 자리는 원래 작년에 조용환 변호사가 추천되었던 자리인데, 천안함 문제에 대한 '확신'을 요구하는 국회의원들의 이상한 행태로 인해 오랫동안 시간을 끌다가 결국 연말에 찬성 115표, 반대 129표, 기권 8표로 국회에서 부결된 바 있다.

여러 매체에서 다뤘고, 인터넷에도 많이 올라와 있지만 조용환 변호사의 인사청문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2011년6월28일 헌법재판소 재판관(조용환) 선출안 심사를 위한 인사청문회

 

결국 조용환 변호사는 천안함 관련 정부 발표를 본인이 신뢰하고 있으나, 확신한다는 표현은 양심상 못하겠다고 발언했다가 저런 변을 당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속기록을 찬찬히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느끼겠지만, 저 답변은 법률가로서 할 수 있는 최상의 답변이고, 일반인의 상식에 비추어보아도 준수하기 짝이 없는 답변이다.

 

특히 우리나라 법은 문제되는 사실을 증명함에 있어서 증명의 정도에 차이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재판관에게 있어서 '확신'과 '신뢰'의 차이는 무의미한 것으로 볼 수 있다(심지어 박선영 의원도 질의 마지막 부분에서 같은 것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다). 설혹 영미법과 같이 증명의 정도에 차이를 두어, 가장 강력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명(beyond a reasonable doubt)'과 가장 약한 '증거우위의 증명(preponderance of evidence)', 그리고 그 중간의 '명백하고 확실한 증명(clear and convinving evidence standard)'으로 나눈다고 하더라도 '신뢰'라는 표현은 적어도 '명백하고 확실한 증명'에 의한 법관의 판단을 표현하는 말이다. 즉,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진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되어 북한의 소행임을 인정하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 정도가 되는 것이다.

 

더구나 속기록의 홍일표 위원은 판사로 근무를 했던 사람이고, 박선영 위원은 법학박사이자 동국대 법대 교수이며, 남편은 민일영 현 대법관인 사람이다. 그런 분들이 저런 일을 국회에서 벌이고, 법조당이라고까지 불리는 여당은 그걸 빌미 삼아 동의안을 부결시키다니 참...

 

아무튼 저 문제는 이미 지나갔고 어차피 말이 안 통하는 분은 계속 안 통할 것이니 각설.

 

이 포스팅은 저 문제를 따지자는 건 아니고, 새로 추천된 김이수 후보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분명히 김이수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에서도 저 문제는 또 다시 나올 것이다.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 맞습니까?"

 

"확신합니까?"

 

"김정은 개X끼 해봐"

(위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박선영 의원의 질문 중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세계의 최장ㆍ최악의 독재정권은 어느 정권입니까?" 이건 뭐.. 아예 전원책처럼 대놓고 김일성ㆍ김정일 개X끼 해보라고 하든가.)

 

아무튼 나는 벌써부터 김 후보자의 대답이 기대된다.

 

아니, 사실 기대할 것도 없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양식있는 법관이라면 또 다시 저 대답을 반복할 수 밖에 없다. 설사 똑같은 논란이 재연될 것이고 여당은 또 그것을 빌미삼아 정치 쟁점화, 대선 이슈화할 것이 확실하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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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 이사카 코타로

 

 

 

오랜만에 소설을 완독했다. 시간이 없지만 지친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읽었다.

처음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망감이 좀 들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실망감보다 만족감이 크다. 꽤 괜찮은 작품이고 매력이 있는 작가였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물론 당장은 못하고 좀 여유가 생기면. ㅠㅠ

 

그러나 재미읽게 읽긴 했지만, 그래도 몇가지 걸리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고 갈 수는 없다.

 

우선 소설이 꽉 짜여진 맛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난 소설은 응당 필연과 복선이 작품 전체를 관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가 유기적으로 응집,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을 죽 늘어놓는 건 질색이란 말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필부들도 술 한잔 걸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소설가는 그런 맥락없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시간적, 논리적, 당위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꽉 짜인 맛이 별로 없고 우연이 난무한다. 주인공은 뜬금없이 초능력을 얻고, 대학친구를 5년만에 전철에서 우연히 만나 소설의 중심축으로 한 정치가를 끌어들인다. 게다가 주인공의 단골 선술집 주인은 좋아하지도 않는 밴드의 콘서트장에 뜬금없이 나타나 수백명의 인파 중 하필 주인공을 멀리서 딱 알아보는데 그 와중에 아무도 모르는 주인공의 초능력을 한 눈에 꿰뚫어 보기까지 하고, 그 후 주인공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하필 그 선술집 주인은 앞서 말한 정치가의 친위대였다. (허허. 이 소설의 수많은 우연적 전개 중 이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전개는 독자에게 난 도대체 이 글을 왜 읽고 있는걸까? 하는 자괴감을 안겨준다. 메세지가 훌륭해도 서사가 나쁘면 소설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런 메세지는 그냥 신문 칼럼으로 전하는게 깔끔하지 않나.

 

두번째는 위에서 이야기 한 정치가를 상당히 악한으로 몰고 가면서 그에게 전체주의, 파시즘의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고 이를 독자들이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고 있는데....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작가는 독재정치와 군중심리, 악의 평범성(http://windimage.tistory.com/956 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글쎄.. 솔직히 이야기해서 소설에서 묘사된 그 정치가에게선 독재자의 잠재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재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정치가로서 유능한 모습만을 죽 묘사한 후 주인공이 갑자기 "뭔가 두려워졌다." 라고 하더니, 작가가 이게 바로 파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잖아! 라면서 이미지를 덧칠하고, 대중들은 우매하다라고 결론 내리는 걸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세번째는 위의 이야기들을 다 포괄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물론 아직 젊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작가가 '인간'에 대한 통찰은 좀 부족하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내내 우매한 대중들을 힐난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완곡하게나마 비판하면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계속 "생각 좀 해라, 잘 생각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반복하는 작가는, 그러나 본인 스스로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아직 소설에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특히 끝에 가서 결국 대중의 정치 무관심과 그로 인한 독재나 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한 소영웅의 '돈'이라는 사실은 정말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쓰고 보니 너무 가열차게 까고 있구나. 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아이디어는 훌륭했고, 재미도 있었으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곰곰히 곱씹어 볼 것들이 많았다. 특히 내가 이 소설을 찾아 읽게 된 계기가 된 한 대목은 다시 봐도 정말 훌륭했고, 다른 몇 대목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민족주의를 앞세운 우경화 경향이 짙어지는 현 시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많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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