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입학과 사회적 배려

#1.

 

얼마 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손자이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통해 사립 국제중학교에 입학해 논란이 있었다. 논란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뒤늦게 포스팅으로 남겨두려 한다. (나도 삼성가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로서 육아전쟁 때문에 그 동안 짜투리 시간조차 없었다.)

 

 

#2.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지원했다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법학에서 말하는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 또는 "잠정적 우대 조치"에 해당한다.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는 종래 사회로부터 차별을 받아 온 특정집단에 대해 그 동안의 차별로 인한 불이익을 보상해 주기 위하여 그 집단의 구성원에게 취업이나 입학 등의 영역에서 사회적 이익을 직·간접적으로 부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미국에서 인종차별 문제를 시정하기 위해 할당제 등을 통해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기회의 평등이 아닌 결과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으로서 평등원칙의 개념에 반하고 역차별 문제를 야기하지만, 정책적 필요에 따라 법원 또한 일정부분 이를 인정하고 있고 인종에 이어 여성, 장애인 집단에 대해서까지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미국의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는 대부분 인종문제에 대한 조치들이고, 법적 심사에 있어서도 인종 문제에 대한 것은 완화된 심사를 하나 여성 문제에 대한 것은 엄격 심사를 하는 등 이를 다루는데 있어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를 일정 부분 수용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인종 문제는 이슈가 된 적이 없으므로 주로 여성, 장애인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예: 양성평등채용목표제, 장애인 채용 인센티브제 등). 위에서 말한 사립 국제중학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도 미국의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로서 학교 입학시에 주어지는 소수인종에 대한 할당제를 '국제'중학교란 이름에 걸맞게 우리식으로 벤치마킹해 온 것으로 보인다.

 

 

#3.

 

내가 가진 의문점은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위 국제중학교의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의 대상이 과연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의 대상으로서 적절했는가? 하는 점이다. 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는 특정하고 명확한 표지(이를테면 피부색, 성별)를 가진 '집단'이 존재하고, 그 집단이 종래 계속적이고 뚜렷하며 중대한 차별을 받아왔을 때 행해지는 것으로서 그런 개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정당성을 가지기 어렵다.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은 편부모 자녀로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해당되었다고 하는데, 편부모 자녀가 특정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며, 편부모 자녀라는 사실 자체로 (개인적 차원을 벗어나) 사회로부터 계속적인 차별을 받아왔다는 점은 더욱 의문이다.

 

 

#4.

 

두 번째는 보다 근본적으로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립 국제중학교가 사실상 귀족학교로 변질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국제중학교 입학 자체를 '사회적 배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다. 미국에서의 적극적 평등실현 조치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걸쳐 있지만, 특히 입학에 있어서의 할당제 등 우대조치는 로스쿨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혜택이고, 학부 입학에서도 소수민족 우대제도가 존재하긴 하지만 로스쿨만큼의 일종의 특혜로 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학부 졸업만으로 특정 자격이 주어지거나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사립 국제중학교 입학이 선망의 대상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졸업자가 그 자체로(변호사 시험 응시자격 같은) 일정 자격을 획득하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회적 지위를 구축한다고 보기도 어렵다(설령 그 곳이 진짜 귀족학교라서 부유하고 유능한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다고 한들 그 사실이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에 직접 기여하지는 않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라. 고작 중학교 아닌가!). 그런데 그 사립 국제중학교 입학이 어떻게 '사회적 배려'가 될 수 있다는 말일까?

 

 

#5.

 

정리하면 위의 국제중학교에서 시행하고 있다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그러한 우대조치의 배경이나 요건도 이해하지 못한채 미국의 제도를 무분별하게 베껴 온 것 같다. (사립학교의 학생 선발에 있어서 자율권이 있으므로 평등원칙 위반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또한 그 국제중학교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을 실시하는 자체가 우습기 짝이 없다. 학교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과 선민(?), 선학(?) 의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한데, 그 학교에 입학한다고 해서 더 좋은 상급학교 진학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능력과 관계 없이 더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위 내용(특히 고작 중학교 운운 등)을 보고 피튀기는 아이들 교육전쟁의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놈이라고 혀를 끌끌 차는 분도 있을 것이고, 나 또한 내 자식이 저렇게 명문 혹은 귀족학교라고 불리는 곳에 입학한다면 흐뭇해하고 자랑스러워 할 지도 모른다(모르는게 아니라 사실 분명 그럴 것이다 -_-). 그러나 열세네살 남짓한 애들이 들어가는 중학교에서부터 벌써 명문과 비명문 또는 귀족과 서민학교가 나뉘는 현실에 대해서는 사회가 침묵하고, 언론들은 이를 오히려 부추기는 행태를 보며 참 한심하기 짝이 없어서 한마디 남겨 둔다. 재벌가 자제가 귀족중학교에 편법 입학한 것도 문제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 인식 속에 귀족중학교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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