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리스트
글
마왕 - 이사카 코타로
오랜만에 소설을 완독했다. 시간이 없지만 지친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읽었다.
처음엔 기대했던 것보다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어 실망감이 좀 들었지만, 끝까지 읽고 나니 실망감보다 만족감이 크다. 꽤 괜찮은 작품이고 매력이 있는 작가였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찾아 읽어봐야겠다. 물론 당장은 못하고 좀 여유가 생기면. ㅠㅠ
그러나 재미읽게 읽긴 했지만, 그래도 몇가지 걸리는 부분을 지적하지 않고 갈 수는 없다.
우선 소설이 꽉 짜여진 맛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난 소설은 응당 필연과 복선이 작품 전체를 관통해 처음부터 끝까지 서사가 유기적으로 응집, 결합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우연히 일어난 사건들을 죽 늘어놓는 건 질색이란 말이다. 그런 이야기라면 필부들도 술 한잔 걸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소설가는 그런 맥락없는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조합해서 시간적, 논리적, 당위적으로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보여줘야 하는 직업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꽉 짜인 맛이 별로 없고 우연이 난무한다. 주인공은 뜬금없이 초능력을 얻고, 대학친구를 5년만에 전철에서 우연히 만나 소설의 중심축으로 한 정치가를 끌어들인다. 게다가 주인공의 단골 선술집 주인은 좋아하지도 않는 밴드의 콘서트장에 뜬금없이 나타나 수백명의 인파 중 하필 주인공을 멀리서 딱 알아보는데 그 와중에 아무도 모르는 주인공의 초능력을 한 눈에 꿰뚫어 보기까지 하고, 그 후 주인공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하필 그 선술집 주인은 앞서 말한 정치가의 친위대였다. (허허. 이 소설의 수많은 우연적 전개 중 이건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전개는 독자에게 난 도대체 이 글을 왜 읽고 있는걸까? 하는 자괴감을 안겨준다. 메세지가 훌륭해도 서사가 나쁘면 소설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런 메세지는 그냥 신문 칼럼으로 전하는게 깔끔하지 않나.
두번째는 위에서 이야기 한 정치가를 상당히 악한으로 몰고 가면서 그에게 전체주의, 파시즘의 이미지를 뒤집어 씌우고 이를 독자들이 비판적으로 보게 만들고 있는데....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다. 작가는 독재정치와 군중심리, 악의 평범성(http://windimage.tistory.com/956 참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글쎄.. 솔직히 이야기해서 소설에서 묘사된 그 정치가에게선 독재자의 잠재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독재자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정치가로서 유능한 모습만을 죽 묘사한 후 주인공이 갑자기 "뭔가 두려워졌다." 라고 하더니, 작가가 이게 바로 파쇼로 가는 길일 수도 있잖아! 라면서 이미지를 덧칠하고, 대중들은 우매하다라고 결론 내리는 걸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세번째는 위의 이야기들을 다 포괄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물론 아직 젊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작가가 '인간'에 대한 통찰은 좀 부족하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 내내 우매한 대중들을 힐난까지는 아니더라도 매우 완곡하게나마 비판하면서 주인공의 입을 통해 계속 "생각 좀 해라, 잘 생각해야 한다."라는 메세지를 반복하는 작가는, 그러나 본인 스스로는 인간에 대한 '생각'을 아직 소설에 제대로 담아내고 있지 못하다. 특히 끝에 가서 결국 대중의 정치 무관심과 그로 인한 독재나 파시즘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한 소영웅의 '돈'이라는 사실은 정말 실소를 자아내게 했다.
쓰고 보니 너무 가열차게 까고 있구나. 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의 아이디어는 훌륭했고, 재미도 있었으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곰곰히 곱씹어 볼 것들이 많았다. 특히 내가 이 소설을 찾아 읽게 된 계기가 된 한 대목은 다시 봐도 정말 훌륭했고, 다른 몇 대목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민족주의를 앞세운 우경화 경향이 짙어지는 현 시점에서는 시사하는 바가 많은 소설이다.
'Imprompt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2) | 2012.09.23 |
---|---|
여행노트 단상 (2) | 2012.08.27 |
내 아내의 모든 것 (1) | 2012.08.20 |
다크 나이트 (0) | 2012.07.30 |
배트맨 비긴즈 (0) | 2012.07.25 |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