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12. 9. 9. 14:36

斷想

#1.

 

어린애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SNS상에서 갖가지 허세를 만나게 된다. SNS의 매력이란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불특정 다수에게 떠들 수 있다'는 점에 기반한 것이므로 허세를 떠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을 볼 때마다 나도 어릴 때는 저랬었다는 생각에, 심지어 지금도 누군가는 나를 보고 이렇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에 움찔하게 된다. 생각을 드러내 보이고, 누군가와 소통을 하는 것,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쉽지 않은 일이다.

 

 

#2.

 

소설가 박범신 씨가 예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친구신청이 오면 다 받아주는데, 두 가지 예외가 있다. 첫번째는 개인이 아닌 회사나 단체 명의 계정일 때 받아주지 않고, 두번째는 프로필 사진에 본인 얼굴을 올려놓지 않은 경우에는 받아주지 않는다." 나도 이러한 원칙에 아주 공감하는데, 위에서도 얘기했지만 SNS라는 건 결국 소통을 가장해 자기과시를 하기위한 공간이란 점을 고려하면, 그리고 온갖 상황의 설전들도 오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적어도 타인에게 자신에 대한 최소한의 정보는 공개하는게 예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최소한의 정보라는게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생년월일, 학력, 직장 같은 것보다는 얼굴이 적절한 것 같다. 친구를 찾는다는 페이스북 본래 명목에도 부합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차도르를 뒤집어 쓰고 다니는 것은 아니니 정보의 보호가치가 다른 것들에 비해 좀 낮다는 개인적인 생각.

 

 

#3.

 

덧붙여 한가지 더 이야기하고 싶은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서 친구는 여럿 맺어 주변 사람들의 정보나 동향은 모조리 빨아들이면서, 자신은 글 하나, 사진 한 장 안 올려놓은 사람들에 대해서다. 이 분들은 한마디로 '정보거지'라고 부를만한 사람들인데, 남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은 다 들여다보길 원하면서 자신은 전혀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이상한 성향을 갖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허세인간들의 행동패턴이 역으로 흐른 경우인데, 앞서 말한 것처럼 소통을 명목으로 한 공간에서 최소한의 예의도 저버린 처사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이 많은 이유는 '정보'가 권력적 속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가 공포영화의 제목이란 점은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정보는 가진 자에게는 힘을, 그 대상이 된 자에게는 공포를 안긴다. 그렇지만 개인간의 관계까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저런 계산을 기초로 접근하는 사람은 밉상일 수 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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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Thoughts/Law Like Love 2012. 8. 31. 16:53

배심제에 대하여

삼성vs애플 특허 소송에 대해 비판하면서 배심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이야기의 골자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들이 전문적인 영역을 심판하는게 말이 되느냐는 것. 하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말이 된다.

 

배심제는 일반시민들이 직업법관으로부터 독립하여 사실문제(형사사건에서는 유·무죄의 판단)에 대한 평결을 내리고, 법관이 그 사실판단에 대한 평결결과에 구속되어 재판하는 제도를 말한다. 미국, 영국, 러시아, 캐나다, 호주, 스페인, 홍콩 등 50여개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배심제의 장점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① 국민이 직접 사법제도에 참여해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다는 점, ② 구두변론을 철저히 할 수 밖에 없으므로 재판이 충실해 진다는 점, ③ 법관 독단으로 인한 사법 불신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 ④ 일반인들의 상식에 기초한 평결이 내려지므로 여론이 납득하기 쉽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반면 배심제의 단점으로는,

① 배심원 선정 과정에서 공동체 대표성을 갖추기는 사실상 어렵다는 점, ② 재판이 충실해지는 반면 많은 시간, 비용 투입 때문에 효율성이 극히 떨어지게 된다는 점, ③ 배심원들이 여론, 언론의 입장에 그대로 동조하기 쉽고 감정, 선입견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점 등이 꼽힌다.

 

개인적으로는 배심제에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예전에 형법을 가르치는 교수님께서 국민참여재판 참관을 갔다가 편의점에서 절도를 한 피고인에 대해 검사가 절도하는 전 과정이 명확하게 찍힌 CCTV를 제시했는데도, 피고인이 불쌍하게 생겼고 재판 내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우는 모습을 보이자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 평결이 나오더라며 황당해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결국 재판장이 평결과 정 반대의 판결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하는데, 이런 걸 보면 배심원제의 위 단점 중 ③번이 크게 느껴지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또 한편, <보스턴 리걸>이란 미드에서 주인공 앨런 쇼어 변호사의 비서인 캐서린 파이퍼 할머니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던 에피소드도 생각난다. 파이퍼 할머니는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르고 운 좋게 처벌을 피한 피해자가 또 살인을 저지를 것이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하자 그를 살해한다. 이에 대해 앨런 쇼어 변호사는 위법성 조각을 주장하는 한편, 이 할머니를 감옥에 넣는다고 사회의 정의가 얼마나 바로 서게 되며, 사회가 얼마나 더 안전해지느냐는 내용으로 변론을 펴는데 그 내용이 상당히 와 닿는 게 있었다. 사실 우리 법제 하에서라면 캐서린 파이퍼 할머니는 우발적이긴 했으나 고의가 없었던 건 아니고, 정당방위 상황도 아니었으므로 무죄 판결은 절대 불가하다. 하지만, 글쎄.. 그게 정말 옳은 것일까?

 

이렇듯 장, 단점이 뚜렷한 제도이기 때문에 결국 배심제는 정치적 결단에 따라 도입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고, 만일 도입한다면 위와 같은 단점들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법에도 좀더 엄정한 민주적 통제를 가하고, 일반 국민들의 상식적인 판단을 중시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고 풀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특허 소송의 전문성과 특수성을 내세우면서 삼성vs애플 사건 평결의 부당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허소송에도 배심제를 도입하면서부터 그런 건 이미 익스큐즈되어 있는 사항일 뿐더러, 일반인의 상식에 현저히 반하는 평결이 나왔으면 모르겠으되 이번 사건이 솔직히 그러한가? 또한 더 본질적으로 만일 전문가들에게만 배심을 맡겼다면 이번 소송의 결과가 많이 달라졌을까? (평결 직후부터 국내 언론들은 배심원장인 벨빈 호건 씨가 관련 전문가로서 그가 평의를 주도했을 것으로 예상하면서 그건 심각한 문제라는 기사도 쏟아내고 있다. 전문성이 없다고 욕하면서, 전문가가 주도하는 걸 또 욕하는 건 뭐 어쩌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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