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12. 8. 1. 21:43

신아람 오심 사건을 보며

올림픽에서의 오심에 대한 성토가 이번에는 더욱 치열하다. 사람들은 대화에서, 인터넷에서 모두들 억울함에 몸서리치고 있다. 삶 자체가 억울함으로 점철된 사람들이 그나마 공정하게 경쟁한다는 스포츠에서마저 위로받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큰 억울함을 느끼자 폭발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체육회와 박용성 회장의 대응이 오히려 기름을 붓고 있다. "어차피 항의해봐야 안될 건데 특별 메달이라도 감지덕지니 대충 받고 끝내자." 즉, 흥분하지 말라. 일단 참으라.

이거 어딘가에서 참으로 많이 본 듯한 말 아닌가?

 

사람들이 가장 억울해하는 때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뀔 때이다. 그러나 사실 모든 사회 구조나 제도는 그러한 억울함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헤게모니를 쥔 집단은 법과 제도를 조종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권력자 혹은 가진 자의 분노는 제도적으로 보장되지만 약자의 분노는 일반적으로 폭력 취급되어 오히려 가해자 또는 범죄자로 전락하는게 현실이다. 시스템 자체가 약자는 우아하고 세련된 시민일 수 없도록 만들어 놓고는, 강자들은 그러한 시스템 뒤에 서서 약자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흥분하지 말라. 일단 참으라." 

 

이번 신아람 오심 사건은 위와 같은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대립구도를 국제 스포츠계에 정확히 투영한 사건이다. 기존 펜싱 강국이었던 서유럽 국가들은 룰, 심판 등 헤게모니를 틀어쥐고는 조금 돌출된 (실력있는) 약자인 우리나라 혹은 우리 선수와 국민들을 피해자로 만들고 억울함을 안겨주었다. 당연하게도 선수 본인과 국민 여론은 분노와 억울함을 쏟아냈는데, 그에 대한 헤게모니 혹은 시스템의 대답은 항의 기각, 기각, 무시 일변도이며 대한체육회와 박용성 회장은 그러한 강자의 시스템에 오히려 부역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언론들은 이제 SNS 등을 통해 분노를 쏟아내는 국민들을 인터넷 신상털기 운운하며 가해자로 매도해 가고 있기까지 하다.

위에서 이야기 한 (약자들의) 사회적 분노에 대한 강자의 대응과 정말 흡사하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번 신아람 오심 사건에 대해 KBS 최승돈 아나운서가 했다는 멘트, "스포츠는 이제 더 이상 신성하지 않습니다."는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 "스포츠도 이제 가면을 벗었습니다." 스포츠가 언제 신성한 적이 있기나 했는가? 인류 화합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은 현재의 그 허울좋은 명분과는 전혀 다르게, 본래 세계 인종들을 끌어모아놓고 서유럽의 인종적 우월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사였다는 주장이 근래 힘을 얻고 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라는 쿠베르탱이 본시 지독한 인종주의자였다는 사실까지 곁들여지면 주장이 아니라 거의 확신에 이르게 된다.

우리 선수들과 국민들은 앞으로도 가면을 벗어던진 스포츠계의 헤게모니 균열과 사수를 위한 전장 속에서 꽤나 오랜 기간 더 큰 억울함을 여러 번 맛보게 될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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