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2. 12. 9. 10:10

오늘 주절거리는 시 No.4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 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위에 뜻 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 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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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후로 내가 즐겨 읽어보는 시 중 하나가 되었다.
이 시 하나 때문에 난 백석이란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고 연민을 느끼게도 되었으며 사랑하게 되었고 사무치게 되었다. 언어의 힘은 대단하다.

정작 내가 어떤 한 시를 많이 찾아볼 때는 가만히 있다가 그 시를 찾아보는 것이 뜸해지면 불현듯 생각이 나서 홈페이지에 올려보곤 하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제목은 '어제 주절거렸던 시'가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시는 감성이 호응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감동을 주는 그런 시니깐 괜찮다.^-^ㆀ

더 이상은 No comment.



* BGM : Forest Gump OST 中 - I'm Forrest...Forrest Gump


* ⓦⓘⓝⓓ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8-03 13:51)
지환군

12/09

내가 좋아했던, 친구가 좋아하는 사람은, 백석을 좋아하고, 존레넌을 좋아하며 그리고 나이스한 사람이었지. 그리고 정의에 가득찬 법대생. 나이스한 사람이라는 것과 정의에 가득찬 법대생이란 것 빼고는 좋아한 것이 나랑 같았었는데, 이런..--; 고등학교 때, 처음 문학발표를 한 것이 백석에 대한 것이었던 기억이 나네. ㅋㅋㅋ

12/10

이걸 보고 있는데...갑자기...tv에서...백석의 사랑이야기가 나오네...
ㅡㅡ;...이 무슨 조화인고?...

12/10

전군)하느님께서 너에게도 문학의 감화를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내려주시는구나 ㅋㅋㅋ 신의 은총을 물리치지 말지어다~ 시 좀 읽어보고 그래라 궁상맞아 보이기도 하는데..ㅡ_ㅡ;; 자기만 좋으면 되는거니 모...

12/10

지환형님)백석보다는 공양미 삼백석이 더... ←몬 소리냠 ㅡ_ㅡㆀㆀ 퍽퍽 켁 음.. 그 분이 좋아하는 것에 형을 맞추는 것 보단 형의 모습을 그 분이 좋아하도록 만드는게 더 좋자나요~^^(그래서 실패해따 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시다면 무지 죄송 ㅡ_ㅡ^) 근데 정말 형은 객관적으로도 상당히 그레이트하신뎅.. 왜 지금껏 여자칭구가 없으신건지 ㅡㅡ;;

12/10

백석을 조아하고 존 레넌을 좋아하며 (그 기준을 잘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나이스하고 정의에 가득찬 공대생이며 (작업중인)후배에게 멋지게 선물도 건네주실 줄 알고 밥도 잘 사주시는데 흠.. (ㅋㅋㅋ 근데 지금 모하는 거징?? 당사자 민망하게시리.. ㅎㅎ^^)

12/12

오늘 결국 도서관 개가실을 빨빨 거리면서 돌아다니다가 마침 한 책상에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란 이름의 백석 전기가 굴러다니는 걸 보고 두 권을 빌려오고 말았군요^^;;; 전기 같은 거 읽는 건 정말 오랜만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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