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Law Like Love 2004. 9. 12. 11:16

국가보안법, 사라져야

난 우리학교를 정말 사랑한다. 세간의 평가로는 우리학교출신은 다들 그렇다고 하지만, 난 내가 생각하기에도 과도하게 우리학교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특별히 멋지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용기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아래 칼럼을 읽으면 정말 교수님을 존경할 수 밖에 없고 학교를 더욱 좋아할 수 밖에 없다. 학내 신문사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사회적으로 미묘한 사안으로 미묘한 시점에 교수님께서 저런 글을 지면에 쓰시는데는 개인의 신념을 넘어선 일종의 결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난 이런 모습을 볼 때 교수님을 존경하게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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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9. 6 고대신문 - 탁류세평>


국가보안법, 사라져야


하태훈(법과대 교수·형사법)


9:0, 엊그제 막을 내린 아테네 올림픽의 경기 스코어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와 제5조(이적표현물 제작·소지)에 대해 전원일치 합헌결정을 내렸음을 나타내는 수치이다. 이는 9명의 재판관 중에서 어느 누구도 변화된 시대상황과 국민의 법감정에 귀 기울이지 않았음을 여실히 드러낸 균형 잃은 결정이다. 폐지를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과도 상반된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개정에 찬성하고 소위 보수진영에서 조차도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조항들에 대해서 한목소리로 합헌결정을 내림으로 개정논의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됐다. 이로 인해 폐지와 개정의 여야(與野) 대립각이 여여(與與) 내부갈등으로 무뎌지고, 순조롭게 보이던 정치권의 폐지움직임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이다. 명칭사기에 불과한 가칭 ‘민주질서수호법’이라는 대체입법안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폐지론와 개정론의 틈새에서 삐져나온다.

국가보안법은 남북대치의 시대상황에 따라 고착화된 법이니만큼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사라지는 것이 순리이다. 1948년 제정 당시 이미 법치주의적 관점에서 법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었음에도, 해방 직후 좌익세력에 대한 대응필요성을 이유로 임시조치적 성격을 갖고 탄생했다.

그러나 남북 분단 상황을 이유로 개정을 거듭하면서 강화·고착화되어 우리의 안보를 보장하는 불가결한 법적 장치로 여겨졌다. 일제시대의 치안유지법을 베낀 국가보안법은 제정 당시 우려했던 대로 정치적 악용의 소지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떨쳐내지 못하고 남북대치상황이라는 미명 하에 국가안보가 아니라 정권안보의 목적으로 악용되고 인권탄압의 도구로 오남용돼 끊임없이 헌법적 및 법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국가보안법위반사범의 거의 90%를 차지하는 제7조는 ‘반국가단체’, ‘이적단체’, ‘고무·찬양·동조’ 등 자의적 해석이 우려되는 불확정개념을 과도하게 사용하고 있고,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다’는 의미도 불분명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된다. 또한 국가보안법에는 사형에 처할 행위유형이 많이 포함돼 있고 형법에 비해 지나치게 가중된 형벌을 제재수단으로 정함으로 형벌의 적정성과 비례성의 원칙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는 그간 판례가 축적됐기 때문에 더 이상 입법목적을 일탈한 확대해석의 위험은 사라졌다고 강변한다. 또한 평화시대를 기조로 하는 형법상의 내란죄나 외환죄는 오늘날 우리가 처한 국가의 자기안전방어에는 미흡해 국가보안법의 입법목적을 대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형법은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반국가활동을 규율하기 위해 내란죄, 외환죄와 간첩죄 등을 둬 국가전복기도, 간첩행위, 평화교란행위 등을 처벌하고 있다. 형법은 엄연히 국가의 존립과 헌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를 처벌하는 국가보호형법이다. 그렇다면 국가보안법은 형법과의 중복성 때문에 특별법으로서의 존재의의가 없는 것이다. 남북이 대치하고 이념이 대립하던 1953년 국회에서, 초대 대법원장이자 법전편찬위원장이셨던 김병로씨도 “이 형법전을 가지고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을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물론 국가보안법의 반세기 역사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팽팽하다. 남북이 분단돼 대치하고 있는 시국에서는 국가보안법이 국가안보에 기여했다고 보는 긍정적 평가와 국가안보라는 미명 하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민주화를 더디게 한 악법이라는 평가가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시대상황은 국가보안법 제정당시나 냉전시대와는 분명 다르다. 국가보안법을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해야할 상황도 아니다. 정치?군사적 대결이나 긴장관계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평화시대의 동반자로서 남북간 화해협력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는 등 남북관계에 크나 큰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통일지향적 헌법조항(제4조), 정부의 대북정책과 남북교류협력법제 등은 남북한이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실현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가 살아나고 평화 속에 통일된 민족의 미래를 열기 위해서는 국가보안법은 사라져야 한다. 이 기회에 더 이상 대한민국은 국가보안법으로만 존립을 유지하는 허약한 나라가 아니며, 우리 국민은 국가보안법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아야 할 정도의 나약한 국민이 아님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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