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Law Like Love 2004. 10. 22. 08:19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결정에 대해

 

 

난 사실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 뿐만 아니라 법학자들 대부분이, 그리고 대부분의 법조인들이, 또한 이해당사자인 정치권과 서울시 측도 결과를 같은 쪽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예측의 반대 쪽이었다.

일단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으니 그 효력은 인정해야한다. 뭐, 이건 나도 법을 배운 사람이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그건 당연하다. (판단을 존중하느냐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이렇게 된 이상 행정수도 이전은 물건너갔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내가 아는 노무현은 이기는 게임에 올인하는 사람이고 억지를 부려서 일을 망치는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이번에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은 꼭 짚고 넘어가야한다.
법이란 허술해선 안된다. 억지란 전혀 없어야 하며 논리는 칼과 같아야 한다.
모든 인간의 의지를 재단할 수 있으려면, 모든 인간을 승복시키려면,
칼과 같고 굳센 기상을 가지며 오만한 표정으로 논리로서 모든 것을 압도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결정은 그렇지 못했다. 논리는 허술했고 논거는 졸렬했으며 재판관들의 사고는 편협했고 치졸스럽기까지 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전국의 헌법을 공부한 모든 법대생들은 어이가 없었을 거란 점이다. 어떻게 9명 중 8명의 헌법재판관들이 헌법학원론 첫부분에 나오는 관습법의 보충효를 아예 모를 수가 있으며, 연성헌법과 경성헌법의 차이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헌법개정과 헌법변천에 대해서도 이렇게나 무지할 수 있는지... (무지한 건지 무시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판례는 이미 나와버렸고, 전국의 법대생들은 새롭게 이를 따라 공부해야하며 법대교수님들은 이를 따라 자신들의 학설을 수정하거나 적어도 책을 고쳐써야만 한다는 건 서글프기까지 하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이 문제로 왈가왈부할 시기는 지났다. (물론 법학계 내부에선 엄청난 왈가왈부가 있을 것이다. 아니, 왈가왈부가 아닌 일방적 비판이 있을 것이다.)
문제 해결은 다른 방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다시 한번 곱씹자면 '문제'는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균형(개인적으론 이말도 좀 어폐가 있고 '지역들이 나름대로 제 역할을 찾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본다.)이다.
대통령과 정부, 정치권에서 앞으로 더 좋은 방법이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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