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4. 10. 12. 16:35

키워드 데리다


 미디어다음 2004.10.11(월) 18:43
키워드로 보는 자크 데리다의 삶과 생각
9일 타계한 해체철학의 창시자, 자크 데리다의 삶과 철학
미디어다음 / 김진화 기자 
9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숨을 거둔 세계적 석학 자크 데리다(74). 그는 서구문명의 근간이 돼 온 철학적 통념들에 반기를 든 논쟁적인 철학자였다. 그리스 철학 이후 서양 철학사를 관통해온 ‘로고스 중심주의’를 끊임없이 ‘해체’해온 포스트모더니즘의 대가, 데리다는 피에르 부르디외(2002년 작고)와 함께 프랑스를 대표하는 비판적 지성으로 추앙 받아왔다.

[사진=연합뉴스]
그의 작업은 난해한 사유체계로 숱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고 일부 과학자들로부터는 ‘지적사기’라는 통렬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자명함으로 축조된 서양형이상학의 이면과 공백지대를 해체주의라는 특유의 이론적 체계로 무너뜨리려 했던 그의 족적은 정체된 서양사상사의 닫힌 체계에 새로운 사유의 영역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철학적 업적 뿐만 아니라 그가 보여준 실천적 삶 또한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는 역동적인 것이었다. 체코의 저항운동에 직접 참여하고 최근에는 세계적 석학으로서 테러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등 현실참여에 식지 않는 열정을 몸소 보여줬다. 또한 건축과 문학 등 다양한 예술영역에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투영시키기 위해 참여했으며 이로 인해 최근까지도 노벨문학상 단골후보로 추천되곤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거대 사조에 이론적 발판을 제공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현실참여로 이론의 영역에 머물지 않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전형을 보여준 데리다의 삶과 사유세계를 해체주의, 마르크스, 결혼, 앙가주망(지식인의 현실참여), 테러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정리해 보았다.

해체주의라는 철학적 무기
데리다에게 있어 해체는 플라톤 이래 2000년간 견고한 흐름으로 존재해 온 서양철학의 중심을 허무는 작업이었다. “지금까지의 서양철학은 플라톤철학의 각주에 불과하다”는 알프레드 화이트헤드의 지적에서도 드러나듯 플라톤 이래로 지속돼 온 서구형이상학의 일관된 경향을 데리다는 ‘로고스(이성) 중심주의’로 규정한다. 로고스중심주의는 절대적인 진리체계를 중심에 놓는데 이는 그와 반대되는 것들을 배제하고 축출해서 만든 허구에 불과하다는 게 해체주의의 문제의식이었다.

데리다의 이 같은 해체주의 전략은 사고체계 전반으로 이어진다. 데리다가 볼 때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의 해체와 공산주의로의 이행을 시도했던 막스주의 역시 자본주의 사회체계의 이란성 쌍생아로서 총체주의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 밖에 없었다. 자본주의적 체계에 대당하는 총체적 비전이라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에 불과하며 그러한 낡은 문제의식으로는 그 강고한 틀을 깨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데리다의 전략은 전면전이 아닌 게릴라전에 가깝다.

실제로 데리다는 기존의 방식과 전혀 다른 양상으로 작업을 수행했다. 그에게 있어 해체는 기존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책읽기와 글쓰기의 실천이기도 했다. 서구형이상학의 밑바탕을 이루는 로고스중심주의, 음성중심주의, 민족중심주의가 어떻게 작용하면서 철학적 텍스트를 결정짓는가에 관심을 두어 온 데리다는 이제까지 망각돼 왔거나 사소한 것으로 간주돼 온 방법론을 발견해 사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데리다 철학이 현대철학에 남긴 가장 인상 깊은 개념은 ‘차이’에 대한 새로운 사유였다. 자아를 중심에 놓고 전개 돼 온 근대철학의 흐름에서 타자성을 인정하고 차이를 동일성에 앞세우는 사유의 자유로움은 현대철학에 무한한 가능성을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차이의 철학이 사회의 억압적 기제와 폭력적 작동양식의 메커니즘을 잘 드러냈으나 새로운 사회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의 질문에 대한 기초적인 방향성조차 제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허무주의적이고 무기력하다는 비판도 함께 얻고 있다.

신자유주의와 마르크스의 유령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노골화되던 지난 93년 출간된 데리다의 저작 ‘마르크스 유령’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데리다의 이론적 공세의 일환이었다. 당시 데리다는 자신의 저작을 남아프리카 공산당 지도자인 하니(C. Hani)에게 헌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는 1989년부터 시작된 현존 사회주의의 급격한 몰락으로 위축됐던 서구 좌파들이 ‘마르크스로 돌아가자’라는 구호 아래 결집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던 시기로 데리다의 작업은 이 같은 흐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국의 저명한 국제사회주의 이론가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유령학의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데리다의 마르크스 분석이 모호하다는 점과 운동으로서 마르크스주의와 거리를 둔 채 정신이라는 관점을 취했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면서도 “그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머뭇거리면서 또 모호하게 공감을 표명했다 할 지라도 그것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좌파적 입장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것이기에 환영한다”고 논평했다.

1974년 이후 데리다의 후반기 저작은 그의 해체론적 사유를 철학의 경계를 안팎으로 자유롭게 드나들며 확대하는 것이었고 ‘마르크스의 유령’ 또한 이러한 맥락 하에 쓰여진 것으로 보여진다.

식지 않는 실천의 열정, 앙가주망
지식인의 현실참여, 즉 앙가주망(engagement)이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고 있는 프랑스의 지적 풍토에서 데리다 역시 이론적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 실천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1981년 프라하에서 체코의 저항적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저항운동에 개입하다 체포돼 구금되기도 했다. 남아공의 민주화 지도자 만델라의 구명운동에도 적극 참여하며 반인종 차별운동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이후에도 팔레스타인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고 지난해에는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와 함께 전세계적인 테러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내놓기도 했다.

해체론이 적용될 수 있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직접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보들레르, 보르헤스 등의 작가들을 통해 현대문학에 개입하기도 했다. 또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스만과 함께 공원을 설계하고, 비디오아티스트 게리 힐의 작품에 '출연'하기도 하는 등 예술의 영역에서도 활발한 실천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테러리즘이라는 허상
“실제적인 ‘테러’는 세계무역센터의 파괴나 국방부 건물에 대한 공격, 또는 수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살해 그 이상의 어떤 것입니다. 실제적인 테러는 표적 자체에 의해 형성된 이러한 테러의 이미지입니다. 실제적인 테러는 이러한 테러의 이미지를 노출시키고 이용하는 데서 시작되었으며 실제로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습니다.”
“부시와 그 동료들이 ‘악의 축’을 비난할 때, 우리는 아마도 이를 웃어넘기는 동시에 비난해야 할 겁니다. 이 허풍이 지닌 종교적 함축을, 유치한 책략을, 몽매주의적 신비화를 말입니다. 그러나 모든 방면에서 절대적 ‘악’이 위협의 그림자를 뻗치고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는 그야말로 절대적 악, 절대적 위협인데, 왜냐하면 문제가 되는 건 다름아닌 세계의 세계화, 지구 및 그외 다른 곳에서의 삶을 모조리 남김없이 세계화하는 움직임이니까요.”
2001년 9·11 테러 직후 두 차례 이뤄진 위르겐 하버마스와의 대담에서 데리다는 테러리즘 개념을 해체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책임감 있는 유일한 행동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마치 자명한 개념인 양 공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테러리즘 운동이 도착되는 것을 도와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데리다는 9·11 테러 공격이 발생한 이후 대중 매체가 전 세계를 향해 퍼부은 테러리즘과 관련된 이미지나 이야기에 대해서도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결혼이 아닌 '시민결합'
투병생활을 하던 최근까지도 현실 문제에 대한 그의 사회적 발언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는 지난 8월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현행 일부일처제 결혼제도를 부정하며 ‘시민결합(union civil)’이라는 대안을 내놓아 화제를 낳았다.

당시 그는 “결혼이란 단어와 개념, 모호함이나 종교적 위선을 제거하고 섹스파트너들 또는 강제되지 않은 여러 명 사이의 유연한 규약인 계약적 ‘시민결합’으로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기존의 결혼제도에 의해 결합하기 원하는 사람은 종교적 권위 앞에서 그렇게 하면 될 것”이며 “세속법이나 종교법 중 한가지, 또는 두 가지 모두를 통해, 아니면 어느 것도 아닌 방식으로 서로 결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사회결합의 양상이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남녀 사이의 한 가지 결합 방식만을 고집하는 현존 결혼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것이다. 투병생활마저도 그의 자유로운 사고의 힘을 꺽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0/12

이상돈 교수님 수업을 들으면서 상당히 관심을 가졌던 분인데 돌아가셨구나.. 그 사상의 끝자락만 밟고도 감탄하고 지적 환희에 빠지게 만드는 경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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