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4. 11. 7. 11:00

역사를 읽다보면

 

 

역사를 읽다보면 씁쓸할 때가 많은 게,
'역사적으로' 칭찬을 받는 행위는 독재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역사의 평가에 어느새 동참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혼란이 발생한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데 그 이유는,
우리의 시대도 결국 인간의 삶의 양태를 질적으로 가치평가하면 이전 역사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을 크게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적인 모습으로 잘 해보려고 하는 것은 역사에서 지금껏 싸그리 실패해왔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모조리 망했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들의 시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왕 그런거 당장 우리가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으면 그게 최선 아닌가?
이런 심정으로 독재옹호의 마수에 스르륵 끌려가버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독재와 목적을 위해 잔인함을 얼마든지 감수하는 그런 정치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 자유와 사람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사회에 대한 신념은 변함이 없지만 그건 정말 이상이고 역사적으로도 단 한차례도 검증받지 못했다는데서, 그리고 오히려 역사는 그 반대를 인간 역사의 발전이라며 옹호하고 있는 모습에서, 그리고 그런 자세가 어느 정도 나 자신에게 설득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역사를 읽다보면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때론 짜증이 확 솟구치기도 한다.

하지만 한가지 내가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건, 결국 사람들이 문제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엘리트주의는 정말 싫지만, 이상적 사회를 상정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과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계는 확연하다. 흔히 쓰이는 엘리트주의라는 말은 정말 능력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사회 자의적으로 형성된 소위 엘리트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우대받는 모습에 대한 비판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어서, 저런 이상적인 사회를 투명하게 이끌어가는 사람들의 엘리트적인 모습과는 구별되어야한다고 변명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두 모습엔 큰 차이가 없다. 이 점은 역사를 바라보다보면 더욱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들이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어떻게든 한때를 살아가는 것 뿐이다. 장래의 전망을 가질 만한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정권을 담당하려면, 장기적인 전망을 세우고 그에 대응하는 기구를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기구는 질서에 의해 굳어지는 것이다. 질서는 위아래의 한계를 뚜렷하게 긋는 것으로, 바로 계급을 만드는 일이다."

- 진순신, <중국의 역사> 제6권 p.98


난 저 이야기에 동의한다. 개인의 이상이란 것도 결국엔 인간의 운명적인 번식시스템 덕분에 계급질서로 변질되고 굳어지고 만다.
그리고 이상을 갖지 못하는 일반적인 '?? - 요즘 흔히 사람들이 자신을 이렇게 지칭하기 좋아하는 의미로서도 - 들은 저런 계급질서에 그대로 적응해버리며, 설사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저 윗 글에서 보이듯이 한 때의 삶으로부터 '여유'가 없어서 귀찮아하다가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게 바로 사람이 문제가 되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엘리트주의에 의한 계몽주의가 나왔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아예 계급질서를 뒤엎어버려야 한다는 사회주의도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도 실패했고.. (물론 그 실패의 이면에는 저들의 이상조차도 계급질서로 변질된데에 있다는 비판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자본에 의한 편안함을 모토로 하는 독재에 모두가 적응하여 그야말로 한때를 살아가고 있다. 자유와 이상에 대한 고민조차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나도 물론 질서에 적응하려고 발버둥치는 자 중에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씁쓸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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