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4. 12. 12. 12:54

콩나물

나는 50대 중반의 실직자이다.
그 잘난 아이엠에프로 퇴출당한 지 6년째이다.
콩가루집안은 아니지만, 아내는 집을 나가 안양의 라면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아들은 군대 갔다. 딸은 대학 2학년 중퇴하고 등록금 마련하느라 월 80만원을 받고 개인회사에 나간다. 아내나 자식들은 가장을 잘못 만난 죄로 고통스러워 하고 있고, 나도 이것이 매우 괴롭다.

딸은 아침밥을 먹지 않는다. 체중이 49kg나간다고 하니 절대 비만은 아니건만 아침밥은 물론 저녁밥도 먹지 않는 이유는 반찬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도 참 안쓰러운 일이다. 세상의 아버지의 마음이 다 그렇겠지.

나같은 중늙은이를 어느 직장에서 써 주겠는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는 또 얼마나 구름같이 많은가?
그래도 나는 닥치는대로 일을 한다. 한달 평균 수입이 50만원 가량이다.
며칠 전 신문을 보니 광주광역시의 택시기사들의 절반이 50만원의 수입으로 연명한다고 한다.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그들은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내 수입이 50만원이라고 했지만, 이 돈으로 전기세-전화세-수도세-도시가스-월세(20만원)-인터넷 사용료(딸도 인터넷을 쓰지만, 나는 인터넷이 없으면 일거리를 찾지 못한다)를 내고 나면 바닥이 날 지경이다.
핸드폰이 있기는 하지만 밖에 나가 전화할 일이 있으면 전화카드를 쓴다. 10원이라도 아껴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통계(?)를 내보았더니 10kg짜리 쌀을 사면 한달 보름을 먹게 되었다. 쌀부대에 '11월 10일'이라고 써놓았는데 아직 3분의 1정도가 남았다. 딸이 밥을 먹지 않고 나혼자 먹으니 그런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하루 두 끼만 먹는다.

젊어서는 국 없이도 밥을 잘 먹었지만, 나이가 드니 맛은 없어도 국은 있어야겠기에 궁리 끝에 콩나물국을 끓여 먹게 되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우리 동네 수퍼에서는 콩나물 5백원어치도 판다. 포장되어 나오는 '황토 콩나물'은 9백원이다.

콩나물을 사오면 잘 씻어서 일단 절반은 냉장고에 넣고 나머지 절반으로 맹물에 국을 끓여 식사 때마다 소금과 소고기다시다를 쳐서 데워 먹는다. 즉, 콩나물 5백원어치면 일주일을 먹는다는 얘기이다.
김치는 반찬가게에서 사 먹는데, 이것이 얼마나 정 떨어지게 맛이 없냐 하면 김치찌개도 끓이지도 못할 정도이다. 내 주제에 반찬투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맛이 쓰다. 수퍼에서는 '종가집 김치'등 진공포장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돈을 아끼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밥상 위에는 밥과 콩나물국, 창난젓, 김치가 놓여지는데 이렇게 밥을 먹다보면 서글퍼져서 눈물이 쏟아져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서울역 노숙자를 떠올리며, 거기 비하면 나는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자위하며 '죽지 않기 위해' 식사를 한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으면 일단은 절대로 돈을 쓰지 말아야 하는데, 이것이 몸에 배어 거의 살인적으로 절약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지저분한 얘기이지만) 소변을 본 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을 씻고 그 물로 변기의 소변을 내리는 식이다. 요즘처럼 추운 날도 난방(도시가스)을 되도록 하지 않고 한밤에 딸아이를 생각해 2시간 가량 틀고, 아침 7시에 딸의 세숫물을 데우기 위해 난방을 조금 틀 정도이다. 나도 중늙은이인지라 몸을 뜨뜻하게 지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으랴.

나는 카드가 없다. 그래서 빚은 없다.
빚을 얻을 수도 있지만, 이 나이에 빚내는 일도 그렇고, 무엇보다 갚을 능력이 없어 빚내기가 싫다.
내 돈이 귀하면 남의 돈도 귀한 것이라 떼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낯뜨거운 얘기지만, 얼마 전에는 막내가 김치와 함께 많은 양의 양념한 돼지고기를 갖다 주어 며칠을 호사스럽게 식사한 적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너무 아껴 천천히 먹느라 그만 돼지고기가 상해 그 아까운 것을 절반을 버렸다. 그 귀한 고기를 버리다니!

또 며칠 전에는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는 교회의 자매님이 김장했다며 김치속과 함께 세 포기를 협찬(?)했다.
정말 '사람들이 먹는 김치'여서 그런지 가게에서 만들어 파는 김치보다는 맛이 기막혔다. 게다가 동생이 용돈까지 30만원을 주고 갔으니 지금 당장은 큰 호사를 누리며 산다. 그래도 여전히 국은 그 콩나물국이다.

지난 일요일에는 선배님의 딸이 특급호텔에서 결혼식을 올렸는데 차마 빠질 수 없어 3만원의 축의금을 들고 갔다. 그런데 식사가 너무 초호화판이어서 기가 막혔다. 아니, 그만 기가 팍 상해 주눅이 들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특급호텔의 점심이 얼마나 호화로운가를 상상해 보라.
그러니까 내가 준비해 간 3만원의 축의금이 사실 '밥값'도 안되는 돈이어서 속으로 비참한 감이 들 정도였다.

지금의 내 형편은 더이상 고달플 수는 없다.
얼마 전에는 이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넥타이로 목을 매 죽는게 백번 낫겠다 싶어 여러 번 넥타이를 만지작거렸는데, 군대 간 아들이 눈에 밟혀 이 앙다물고 마음을 다시 잡았다.
그래, 죽을 용기로 살아보자, 악착같이 살아남자......

나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다. 그래서 '고린토사람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10장 13절을 떠올리며 힘을 낸다. 그 내용은 이렇다.
-여러분이 겪는 시련은 모두 인간이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시련들이었습니다.

그렇다. 시련을 견디며 살아남을 일이다.
북한식으로 말하자면 지금은 '고난의 행군'이다.

또 어느 분은 내게 이렇게 충고해 주셨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실 때에는 고통만 주시는 게 아니다. 그 속을 잘 헤집어보면 '선물'도 반드시 포함돼 있다.....

감동적인 말씀이었다.
그렇다면 내게 '선물'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들'이다!
당연하지! 내년 6월 아들이 제대하고 오는 그리운 그날까지 살아남을 일이다. 내가 죽으면 살아남은 내 가족은 일생 피멍이 든 가슴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처럼 고달프게 살았으니 그때는 뭔가가 좀 나아지지 않겠는가-. '고진감래'라 하였으니 고생 끝에 달콤한 그 무엇이 반드시 찾아오지 않겠는가-.

고달픈 한국이여! 이 고난을 이겨내자.
오늘은 비록 우리가 이처럼 고달팠으니 이후에는 반드시 따뜻한 보상도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런 믿음이 없이 어찌 고달픈 시절을 받아들인단 말인가?

겨울은 춥다. 지금은 겨울-.
그러나 이 겨울을 이겨내면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찾아올 터이다.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


고달픈 한국의 회복을 위해 지성껏 우리 스스로를 아껴야 할 때이다.

만세! 대한민국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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