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romptus 2006. 6. 26. 05:42

뻔뻔한 딕 앤 제인

#1.

풀뿌리 감상평(?)들을 살펴봤더니 이 영화가 의외로 괜찮다는 평이 많았다. 나로선 처음부터 관심도 안 가졌던 영화인데, 소소한 분들이 소소하게 괜찮다고 하시니 오.. 은근 진흙속의 진주인가보다, 하면서 보게 되었다. 짐 캐리의 괴상한 표정을 포스터에서 또다시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갸웃 거리면서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완전 낚였다.


#2.

고등학교 시절까지만 해도 내게 외국은 그저 새롭고 경이로운 세계였고, 그 중에서도 미국은 단연 동경의 대상이었다. 특히, 가서 공부하고 싶은 곳으로 말이다.(이건 쓰고보니 뭐.. 지금도 마찬가지긴 하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난 미국을 무지 싫어하게 되었는데, 글쎄..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건지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다. 대학에 와서 선배들로부터의 '의식화'란 걸 겪어본 적도 전혀 없고, 사회과학서적보단 문학을 훨씬 많이 읽는 내가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
아무튼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이젠 미국 - 미국인들의 행태를 보면 별 상관도 없는 일에 그냥 진저리가 난다는 점;; 이게 문제다. 그리고 그런 문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도 튀어나왔다. -_-


#3.


이 영화는 엔론-월드컴 사건을 한 번 풍자해보자고 만든 영화인 것 같은데.. 그럭저럭 풍자는 됐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그런 미국인들의 행태마저도 짜증이 난다. 이 영화는 결국 Great USA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짐캐리와 그의 가족이 직장을 잃고 살기가 조금(!) 힘들어지자 강도짓거리를 하다가 더 큰 도둑놈으로부터 크게 한탕했다는 이야기인데.. 그 자체로도 황당한 얘기지만,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면 더 웃긴다. 미국의 밀입국자문제를 상당히 스토리에서 이용했으면서도, 결국 영화 속에서조차 그들의 문제는 전혀 해결해주지 않은채 또다시 미국인 중산층, 그들끼리 잘 먹고 잘 살게 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고 있지 않은가!
현실에서 비참한 사람들은 영화 속에서조차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미국적 정서인가보다.


#4.

아주 큰 원유정제공장이 있었다. 그 공장은 존재자체로 사람들에게 자랑거리였으며, 사람들은 그 공장이 아주 큰 일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많은 기업들은 그 정제공장과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했으며, 심지어는 다른 정제공장 - 그보다 약간 작은 규모의 - 들도 그 공장의 기업클러스터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 공장의 직원들은 최고의 공장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대단했으며 자신들이 세계를 위해 많은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장 큰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그 공장의 사장이었다. 그는 다른 여러 영세한 공장들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큰 공장을 본받아야한다고 말했고, 자신들의 숭고한 작업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를 원했다.
그 공장은 워낙 규모가 컸기 때문에, 정제하려는 원유들을 실은 트럭이 늘 입구부터 끝없이 줄을 늘어서 있었다. 누가보기에도 정말 막강한 공장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공장 출구를 빠져나오는 트럭들은 모두 빈트럭이란 점이었다. 원유를 싣고 그 공장에 들어갔던 트럭들은, 정제된 기름을 다시 싣고 나오지 않았다. 사장은 그 공장을 돌리는데 정제된 기름이 모두 사용되기 때문이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우리들이 이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는 미국의 엄청난 적자,
결국 미국은 세계기축통화인 달러를 더 찍어내고, 또 찍어냄으로서 간단히 적자문제를 해결하고 있는데.. 말로야 별 것 아닌 것이지만, 실상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생산해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소비를 하고 있으며, 이는 곧 그들이 일한 것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더 많이 받는 것은 누가 생산해주는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엔론 - 월드컴 사건의 풍자라.. 그래, 풍자 좋지. 하지만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더 큰 도둑놈들의 국가적 분식회계사건, 이 사건의 풍자는 과연 누가 해줄것인가?
(아니.. 풍자뿐만이 아니라 아예 '해결'..은 어떻게 좀 안되겠니??? ㅠ)


#5.

아무튼 처음 얘기로 돌아가서..
그냥 즐겁게 영화나 보면 될 것을 이런 영화보면서 괜히 이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 나도 참 어이없는 인간이다.
좀 편하게 살아야겠다.


평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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