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Law Like Love 2009. 8. 19. 16:50

국장과 국민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러야 할지, 국민장으로 치러야 할지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국장·국민장에관한법률(이하 "법")"과 그 시행령(이하 "시행령")이 자세히 규정하고 있는데, 지난 노 전대통령의 서거시에 이 법률을 꼼꼼히 살펴 본 일이 있다. 그 내용을 정리해보고, 세간에 잘못 알려지고 있는 부분이 조금 있어 이를 바로잡고자 한다.


먼저 국장 및 국민장을 할 수 있는 사람은 ① 전·현직 대통령 ②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자이다.(법 제3조) 1호의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으나 2호는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어 향후 문제의 소지가 있을 듯 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국장을 치른 인물은 박정희 단 한명이고, 국민장을 지낸 사람은 다음과 같다.

  • 1947년 6월 30일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독립운동가)
  • 1949년 7월 5일 김구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 1953년 4월 17일 이시영 (부통령)
  • 1955년 2월 4일 김성수 (부통령)
  • 1956년 5월 5일 신익희 (국회의장)
  • 1960년 2월 15일 조병옥 (야당 당수)
  • 1964년 10월 24일 함태영 (부통령)
  • 1966년 6월 12일 장면 (총리, 부통령)
  • 1969년 8월 1일 장택상 (국회부의장)
  • 1972년 5월 7일 이범석 (국무총리)
  • 1974년 8월 19일 육영수 (대통령 영부인)
  • 1983년 서석준·이범석·김동휘·서상철·함병춘·이계철·김재익·심상우·하동선·이기욱·강인희·김용환·민병석·이재관·한경희·정태진·이중현 (아웅산묘역 폭탄테러사건 희생자)
  • 2006년 10월 26일 최규하 (대통령)
  • 2009년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


위의 리스트를 보면 알겠지만 대통령이었거나 그에 준하는 최고지도자였던 김구, 장면, 최규하, 노무현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물론 훌륭하신 분들이겠으나 국민장 여부를 따진다면 논란이 될수도 있을법한 분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논란의 여지가 있는 대상자 선정은 어떻게 결정되는가? 이 또한 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법 제3조에서 "주무부장관의 제청으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결정하는 바에 따라 이를 국장 또는 국민장으로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현직대통령이 결정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현재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를 놓고도 국장이냐 국민장이냐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는데 논란이 있을 필요가 없다. 이모씨가 간단히 결정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물론 국장으로.

(덧붙여 한가지 첨언하자면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장이 아닌 국민장이 된 것도 통탄스럽기 짝이 없다. 국장·국민장에관한법률이 제정된 것이 67년이다. 법 제정 이후 치러진 국민장 대상자의 면면을 보면 그야말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격이 맞지 않는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전례가 있지 않느냐고? 최규하 전 대통령을 전직 대통령으로 제대로 인정할 대한민국 사람이 도대체 몇 사람이나 있겠는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셨던 분의 당시 말씀에 따르면, 국장으로 할 경우 현직 대통령이 상주를 맡아야 하는데 살인자가 상주를 맡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것이며, 또한 국장은 국가가 모든 장례절차를 주관하는데 현 정권을 전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셨었다. 하지만 법에선 그렇게 규정하고 있지 않다. 약간 착각을 하셨던게 아닌가 싶다.)

나머지 제반 사항들은 간단하게 표로 한번 정리해보자.


국장

항목

국민장

9일 이내

기간

7일 이내

전액 국고보조

장례비용

일부 국고보조

국장기간 전일

조기게양

국민장 당일

국장일 관공서 휴무

기타

-


잘못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국장일을 임시 공휴일로 선포해야하기 때문에 경제에 차질이 생길까봐 국민장으로 할 것을 현 정권이 선호하고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국장일을 임시 공휴일로 해야한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단지 법 제6조 제2항에서 국장일에는 관공서는 휴무한다고만 정하고 있을 뿐이다. 관공서 휴무로 경제에 약간의 차질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공휴일이 되는 게 아닌 이상 일반 기업들이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고는 할 수 없다.

또한 장례비용 문제도 큰 고려의 대상이 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비용이 총 45억원 가량 들었다고 한다. 한데 국민장으로 거행되면서 국고에서 보조된 장례비용은 29억5천만원에 그쳤다. 나머지 15억5천만원 때문에 측근 분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하셨다는데 크게 모자란다는 말을 얼핏 들은 것도 같다. 일부 공구리안들을 뺀 전 국민들의 조의를 받다보니 발생한 장례비용인데 그것 때문에 유족들이 빚더미에 올라앉아서야 되겠는가.


끝으로 솔직한 내 심경을 말하면 이런 일에 정치적 속셈 때문에 논란이 있어야 한다는 자체가 부끄럽다. 장례 격식 여부가 깔끔하게 정리되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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