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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문제의 헌법적 쟁점과 간략한 비판론
오늘 국내 첫 합법적 존엄사가 시행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며칠 전 써 놓았던 간략한 에세이 한 편.
<존엄사 문제의 헌법적 쟁점과 간략한 비판론>
I. 헌법적 쟁점
존엄사를 인정할 것인가? 또는 인정하지 않을 것인가? 인정한다면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 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를 지키는 것(또는 간접적으로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 될 수도 있다)이 된다. 즉, 이 문제는 국가의 생명보호의무와 개인의 자기결정권(자살선택권)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 것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헌법상 지고의 가치로 전제된 ‘생명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가치, 이를테면 생존의 ‘품격’을 헌법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된다.
II. 존엄사 논쟁의 연혁
(1) 서구에서 존엄사는 오랜 논쟁의 대상이 되었는데, 그 양상은 위와 유사하다. 바로 인본주의와 종교관의 대립이 줄기차게 이어진 것이다. 고대로부터 생존의 품격 혹은 존엄성(그게 명예든 병고로부터의 해방이든)을 지키기 위한 자살은 항상 있어왔으며, 그리스나 로마 시대엔 이런 행위가 영웅적이라고 추앙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세 이후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하면서 모든 형태의 자살은 금기시되었다. 병으로 인한 존엄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며, 여기엔 환자의 극심한 고통은 곧 속죄라는 종교적 믿음도 일조하였다.
(2) 이러한 양상은 근대 이후 뒤바뀌게 되는데 볼테르·몽테스키외 등 근대 계몽주의자들은 자살을 개인의 자유에 속한 문제로 보고 이를 권리의 일종으로 파악하였다. 종교적 반대는 여전하였으나 이런 인식은 점차 확산되어갔다. 1870년 영국에서 발행된 <사색>이란 잡지는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고 청년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기독교가 안락사를 살인으로 규정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 내용을 실어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전체주의의 횡행과 우생학의 등장으로 이런 여론은 극적으로 반전된다. 특히 독일의학자들이 나치에 부역하며 우생학과 인종적 편견을 결합시켜 심신장애자, 불치병환자, 유태인들에 대한 대학살을 일으키게 되자 안락사(혹은 존엄사) 합법화 논의는 완전히 잦아들게 된다.
(3) 현대에 와서 이를 새롭게 재인식하고 다시금 논의의 불을 지핀 것이 1960년대의 전세계적 자유민권운동이었다. 이들은 지배자의 우생학이 아닌 소수자의 인권에 바탕을 두고 존엄사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다시금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반대의 입장에 서있던 종교계에도 변화가 일었다. 존엄사를 반대하는 이유로 신의 의지가 아니라, 생명의 보편적 존엄성을 내세우기 시작했으며, 환자가 존엄사를 선택하는 것은 고통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한다는 점에 착안해 고통 완화 치료의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죽을 권리의 합법화는 경제적 소외계층에게 존엄사 선택을 부추기게 되고, 결국 이들이 전혀 존엄하지 않은 죽음을 맞는데 일조한다는 반론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결국 이러한 존엄사 논쟁은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위에서 살펴 본 헌법적 쟁점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이러한 전제 하에서 우리 사회에서의 존엄사에 대한 접근법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겠다.
III. 우리 사회의 존엄사 논의의 문제점
(1) 일단 존엄사 논쟁의 시발점이 되는 것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어느 선까지 인정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번 존엄사를 인정한 대법원 판결(2009.5.21. 선고 2009다17417)은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추정적 의사’에 의한 존엄사를 인정하였기 때문이다. 자기결정권의 범위를 결정하기 이전에 개인이 결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부터가 불분명하다면 논의의 대상조차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무분별한 추정적 의사 인정은 환자가 병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라 가족들이 환자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선택을 하게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확고한 자기 의사표시가 없는 상태에서는 존엄사는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2) 두 번째로는 자기 결정이 확고하다 할지라도, 그 자기 결정이 순수하게 치료의 고통과 생존의 품격만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원인이 개입된 것이라면 이것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의료비용이 과다해 환자들의 의지를 앗아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병에서 벗어나 살아난다 하더라도 그 후에 기다리고 있는 경제적 고통을 피할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PD수첩 방송분에서 보았듯이 존엄사가 합법적으로 이루어지는 곳들은 기본 전제로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나라들이었다. 이와 반대로 위에서 살펴 본 헌법적 쟁점 이외에 다른 요인이 끼어들 수 있는 상태라면 역시 논의의 대상조차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모든 사회 구성원이 통증 완화 치료를 보장받기 전에는 조력 자살과 적극적 안락사를 합법화하지 않도록 권유하고 있다.
(3) 마지막으로 이러한 논의 이전에 우리 사회가 개인의 생존에 대해서 얼마나 존엄하도록 배려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살아있는 자들의 생존은 시궁창으로 밀어 넣어놓고, 죽음의 존엄성을 먼저 이야기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존엄사의 논쟁점은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권리와 권리의 충돌이 아니다.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와 개인의 자기결정‘권리’가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와 사회는 그 의무를 일단 다한 후에 그래도 개인이 그 권리를 행사하겠다면 이에 대하여 의무를 관철할 것인지 권리행사를 용인할 것인지 논의해 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특히 병에 걸린 사람들과 소외 계층에게 의료부문 뿐만 아니라 다른 경제적 문제, 정신적 위로, 삶의 의지를 다질 수 있는 쾌적한 환경 등을 제공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제공할 것인지를 먼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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