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romptus 2006. 7. 28. 22:30

On the Road - 카오산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al(8957972269) #1.

인터넷 서점에서 다른 책을 사다가 우연히 클릭해 본 책이다. 원래 이런 여행기 종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데, 서평들이 하나같이 너무 좋다는 말 뿐이어서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저렇게까지 찬양-_-을 해대나 싶어서 한 권 구입해 보았다.
실제로 받아보니 책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기획이 딱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냥 한 번 신나게 팔아보자며, 상술을 노골적으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그 꼴. 출판-기획 쪽은 알면 알 수록 정나미가 떨어지는 곳이다.

#2.

최근에 나도 책의 원고를 좀 써준 적이 있다. 모 글로벌 기업을 테마로 베버의 형식합리성을 현대적으로 분석한 사회학 서적에 대한 일종의 서평이었는데, 내 초고를 받아본 편집-기획 쪽의 대답은 이랬다. "주제가 세계화거든요. 그 주제로 다시 써주세요."
뭐, 굳이 쓰려면 억지로 그 쪽으로 쓸 수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 책은 세계화와는 전혀 동떨어진 책이었다. 알다시피 베버의 형식합리성은 근대화로 이어지는 것이고, 책에서도 저자는 세계화는 전혀 다루지도 않았다. 단지 글로벌 기업의 이름이 책 제목에도 들어가 있다보니, 편집데스크 쪽에서 완전히 착각을 했을 뿐.
그래서 겨우 설득을 해서 원래 내가 생각한대로 방향을 바꾸기는 했다. 한데, 더 가관인 것은 그 다음. 초고를 그 쪽에서 다듬었다면서 다시 보내온 것을 보니 완전히 엉망진창이 아닌가! 이를테면 내가 책의 내용에 대해서 반박한 내용들이 '책에서 저자는 ~게 주장하고 있다.'라고 바뀐 식이었다.
서평을 편집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도 그 책을 다 읽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내용을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야할 것이 아닌가. 졸지에 책 내용이 정반대로 둔갑한 해괴한 글이 되어버렸다. 참 그렇게 해놓고 편집이라니.. -_- 전에 기자생활하면서도 많이 느꼈던 거지만 우리나라 편집-기획 쪽은 문제가 정말 많다.

#3.

이 책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이런 팔아보자 기획으로 나오는 책들은 원저자가 써 준 초고를 여러사람이 나누어서 파트별로 소위 '편집'(실제로는 짜집기)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각자 다른 파트에서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는지 잘 모르니 책 전체를 읽다보면 앞에서와 딴 소리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된다. 하지만 출판사도 바보는 아니니 그걸 잡아내기 위해 보통 대장 에디터가 전체적인 흐름을 맞춰서 손을 보는데..
이 책은 편집이 시간에 너무 쫓긴 것인지, 아니면 대장 에디터가 바보였던 것인지 앞뒤가 안 맞는 곳이 두세군데 쯤 나온다. -_- 독자를 우롱해도 유분수지. 책을 편집한다는 사람들이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하는 이 넌센스.

#4.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책 내용은 그럭저럭 괜찮다. 뭐, 그래도 역시 다 좋은 건 아니고.. 사 볼만한 책도 아니다.(싸기라도 하면 그럭저럭 사 볼 수도 있겠지만, 또 이런 류 책들의 특징이 정말 비싸다는 거다.) 그냥 서점에 놀러가서 보고 오는 정도? ^^;; 뭐, 여행자들 인터뷰인데.. 똑같은 질문과 똑같은 답의 반복일 뿐이라서;;;;; 솔직히 이런 걸 사람들이 서평에서 왜 그토록 찬양씩이나 했는지를 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는 인터뷰가 15개 실려 있는데, 그 중에 좋은 것과 별로인게 확연하다. 서점에서 보실 분들은 첫번째 부부 인터뷰랑 네번째 벨기에 커플 인터뷰, 그리고 마지막 세 개 - 자메이카 아줌마 인터뷰랑 스님 인터뷰, 그리고 셀프 인터뷰 이 정도만 보시면 된다. 이것도 너무 많으면 이 중에서도 벨기에 커플 인터뷰랑 자메이카 아줌마 인터뷰만 봐도 된다.
원래 목차를 볼 때는(난 책 목차를 꽤 꼼꼼히 보는 편이라)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여행하는 17살짜리 여자애 인터뷰를 아주 기대했었는데.. 정작 읽어보니 그냥 이상한 애였다. ㅡ_ㅡ 원래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하면 대단한 것이지만, 이상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하면 당연한 거다. 나머지 중에 그나마 좀 흥미를 가질 만한 건, 그리스 아저씨를 인터뷰한 거였는데.. 목차를 보면서 자연스레 조르바를 떠올렸더니 정말 조르바 같은 사람이 아닌가! ㅋㅋ 인터뷰 내용은 별로였지만 그 사람은 직접 한번 만나보고 싶다.

#5.

또 한가지 마음에 드는 건, 이 책을 보니 커플 배낭여행이 하고 싶어졌다는 거다. 특히 마지막에 있었던, 한 커플이 배낭을 짊어지고 나란히 걸어 가는 뒷모습을 찍은 사진은 참 인상이 깊게 남는다. 지금까지 커플 배낭여행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그 생각을 하다보니 또 나중에 결혼즈음에 '이 사람이 과연 진짜 내 짝인가?'를 고민할 때도 '이 사람이라면 같이 커플 배낭여행을 해도 불편함 없이 재미있겠다' 싶은 사람을 고르면 되겠다 싶기도 하고 ㅋ ^-^;;

책에서 맘에 들었던 자메이카 아줌마의 말을 옮기면서 마칠까나.

"라오스의 방비엔에는 '리버사이드'라는 게스트하우스가 있어. 이름 그대로 강가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야. 거기서 일하는 남자가 하나 있는데 매일 그가 하는 일은 안내데스크에 앉아 강을 바라보는 일이야. 그게 전부야! 만약 손님한테 문제가 있으면 가서 해결해주고 돌아와 다시 강을 봐. 하루종일 말이야. 이런 완벽한 인생이 또 있을까?"

'Impromptu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0) 2006.08.03
파리대왕  (2) 2006.08.02
H2 - 너와 함께 한 날들  (0) 2006.07.20
좋아해  (2) 2006.07.15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0) 2006.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