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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omptus
2006. 8. 3. 23:07
소피 숄의 마지막 날들
감히 말하건대, 올해 본 또는 볼 영화 중에서 최고였다.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감상평을 쓸 때 줄거리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보신 분들도 별로 없으신 듯 하고, 보실 분들도 별로 없을 것 같기에(말은 이렇게 하지만 좋은 영환데 무지 안타깝다 ㅠ) 조금 설명을 드리겠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소피 숄(Sophie Scholl)의 죽기 전 마지막 5일간을 담은 영화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선 백장미단이라고 번역되는 weiss Rose를 통해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총 6번에 걸쳐서 나치 독일을 규탄하는 전단을 만들어 뿌렸고, 그 중 6번째 뮌헨 대학에서 전단을 뿌린 것이 발각되어 그녀의 오빠인 한스 숄 등 나머지 구성원 전원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영화가 담은 마지막 5일은 6번째 전단을 만들어 뿌리기 직전부터 사형집행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영화는 담담하다. 재판장이 너무 오바하는 것(이 캐릭터는 너무 유치해서 옥에 티라고 할 정도)만 빼면 그냥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조용하고 잔잔하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 무미건조하지도 않다. 소피가 하는 진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가슴을 찌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그녀의 이상과 그녀의 양심은 저절로 보는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는 그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소피가 수사를 받는 도중, 수사관이 국가주의를 들이대며 소피에게 황당한 전쟁광 논리를 강요하던 때였다. 소피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전혀 틀림이 없는 그런 말 - 구체적으로는 자유(Freiheit)와 양심(Gewissen) - 로 통렬하게 공박하는데, 그러자 할 말이 없어진 수사관은 그녀의 굳건한 신념에 대해 오만하기 짝이 없다면서 그냥 대화를 끝내버린다.
요즘 내가 깊게 생각하던 게 바로 인터넷상의 이런 모습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인터넷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흑백논리적 가치관으로 미리 재단해버리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그래서 대부분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그저 '반응'할 뿐이다. 한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반응'이 잘못된 것일 경우 '판단'을 한 사람들이 이에 대해 반박을 하면 사람들은 '판단'을 통해 '반응'을 고치면 될 것을 또는 적어도 자신도 자신의 판단에 의해 반박을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꼭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저거다. '너만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세상 그렇게 살지마라.. 어쩌구저쩌구, 궁시렁궁시렁'
인터넷상에서 정치적으로 논쟁이 붙은 글들의 리플들 중에 저런 이야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옳은 이야기를 해도, 더 깊게 생각했고, 더 많이 안다는 그 자체로 오만이라는 죄가 뒤집어씌워지는 이상한 포퓰리즘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영화에서 소피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야말로 '양심'에 의해서. 그렇지만 나는 현실에서 저런 일이 있을 때 너만 잘났느니 하는 소리들이 짜증나서 입을 닫아버렸다. 그녀는 용기있고 끝까지 의연하였지만, 난 비겁했던 것이다. 독일어 Gewissen은 양심이란 뜻의 중성명사이지만 '알다'라는 뜻의 wissen의 과거분사형이기도 하다.(고 하더라구;; 독일어는 전혀 모름-_-) 양심의 어원이 '알고 있는 것'이란 뜻이란 점은 참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또 한가지 멋있었던 장면은, 마지막 부모님과 면회를 하는 장면이었다. 사형이 확정되고 잠시 후에 집행이 될 딸을 보며 아버지는 "다 잘했다. 난 네가 자랑스럽구나."라고 말하며 딸을 꼭 안아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울지 않는 초냉혈한은 아마 이 세상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런 멋진 딸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밑에서 이야기 할) 책을 보면 실제는 약간 상황이 달랐지만; 영화 안에서 가장 슬픈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ㅠ)
소피를 연기한 줄리아 옌체라는 배우는 처음 봤는데, 한 방에 반해버렸다. 어떻게 저런 눈빛과 의연함으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놀랍다. 그녀 역시 앞으로 평생 좋아하기로.. (평생 좋아할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_-ㆀ)
더불어 이 영화에 필받아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책도 읽었다.(소피 숄과 비견될만한 로자 룩셈베르크도 생각이 나서 그녀의 책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도 다시 집어들었지만 이건 조금 보다가 일단 보류;;;) 소피 숄과 한스 숄의 누이인 잉게 숄이 지은 책이다. 그들의 삶을 알고 싶은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정말 한구절 한구절이 주옥같고 감동적인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포스팅을 해야겠단 생각에 영화 보고 시간이 꽤 지난 이제서야 포스팅을 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책 첫머리에 나오는 말을 옮기며 마치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도 살아 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강하게 살아 남아라. 한 치의 타협도 없이─.
한스 숄이 했던 말이다.
평점은 ★★★★★
p.s 영화는 나치를 다루다 보니 역시 유태인 학살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합세해서 레바논 민중들을 학살하고 있는 지금 세계를 보면.. 참 할 말이 없다.
스포일러가 되고 싶지 않기 때문에 감상평을 쓸 때 줄거리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 영화는 보신 분들도 별로 없으신 듯 하고, 보실 분들도 별로 없을 것 같기에(말은 이렇게 하지만 좋은 영환데 무지 안타깝다 ㅠ) 조금 설명을 드리겠다.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소피 숄(Sophie Scholl)의 죽기 전 마지막 5일간을 담은 영화이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선 백장미단이라고 번역되는 weiss Rose를 통해 1942년부터 1943년까지 총 6번에 걸쳐서 나치 독일을 규탄하는 전단을 만들어 뿌렸고, 그 중 6번째 뮌헨 대학에서 전단을 뿌린 것이 발각되어 그녀의 오빠인 한스 숄 등 나머지 구성원 전원과 함께 사형을 당했다.
그리고 영화가 담은 마지막 5일은 6번째 전단을 만들어 뿌리기 직전부터 사형집행되기까지의 시간이다.
영화는 담담하다. 재판장이 너무 오바하는 것(이 캐릭터는 너무 유치해서 옥에 티라고 할 정도)만 빼면 그냥 다큐멘터리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조용하고 잔잔하다. 하지만 영화는 전혀 지루하지도 않고 무미건조하지도 않다. 소피가 하는 진술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가슴을 찌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자유에 대한 갈망과 그녀의 이상과 그녀의 양심은 저절로 보는 사람을 감동하게 한다. 끝까지 의연함을 잃지 않는 그녀,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인상깊었던 장면은 소피가 수사를 받는 도중, 수사관이 국가주의를 들이대며 소피에게 황당한 전쟁광 논리를 강요하던 때였다. 소피는 이 이야기에 대해서 그야말로 전혀 틀림이 없는 그런 말 - 구체적으로는 자유(Freiheit)와 양심(Gewissen) - 로 통렬하게 공박하는데, 그러자 할 말이 없어진 수사관은 그녀의 굳건한 신념에 대해 오만하기 짝이 없다면서 그냥 대화를 끝내버린다.
요즘 내가 깊게 생각하던 게 바로 인터넷상의 이런 모습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인터넷 속에서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대해서 흑백논리적 가치관으로 미리 재단해버리고 바라보는 경우가 많은 듯 하다. 그래서 대부분 깊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그저 '반응'할 뿐이다. 한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런 '반응'이 잘못된 것일 경우 '판단'을 한 사람들이 이에 대해 반박을 하면 사람들은 '판단'을 통해 '반응'을 고치면 될 것을 또는 적어도 자신도 자신의 판단에 의해 반박을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고 꼭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저거다. '너만 다 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오만하기 짝이 없다. 세상 그렇게 살지마라.. 어쩌구저쩌구, 궁시렁궁시렁'
인터넷상에서 정치적으로 논쟁이 붙은 글들의 리플들 중에 저런 이야기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옳은 이야기를 해도, 더 깊게 생각했고, 더 많이 안다는 그 자체로 오만이라는 죄가 뒤집어씌워지는 이상한 포퓰리즘의 시대가 된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는데, 영화에서 소피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다. 그야말로 '양심'에 의해서. 그렇지만 나는 현실에서 저런 일이 있을 때 너만 잘났느니 하는 소리들이 짜증나서 입을 닫아버렸다. 그녀는 용기있고 끝까지 의연하였지만, 난 비겁했던 것이다. 독일어 Gewissen은 양심이란 뜻의 중성명사이지만 '알다'라는 뜻의 wissen의 과거분사형이기도 하다.(고 하더라구;; 독일어는 전혀 모름-_-) 양심의 어원이 '알고 있는 것'이란 뜻이란 점은 참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또 한가지 멋있었던 장면은, 마지막 부모님과 면회를 하는 장면이었다. 사형이 확정되고 잠시 후에 집행이 될 딸을 보며 아버지는 "다 잘했다. 난 네가 자랑스럽구나."라고 말하며 딸을 꼭 안아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울지 않는 초냉혈한은 아마 이 세상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멋진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런 멋진 딸이 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밑에서 이야기 할) 책을 보면 실제는 약간 상황이 달랐지만; 영화 안에서 가장 슬픈 장면임에는 분명하다. ㅠ)
소피를 연기한 줄리아 옌체라는 배우는 처음 봤는데, 한 방에 반해버렸다. 어떻게 저런 눈빛과 의연함으로 연기를 할 수 있는 것인지.. 놀랍다. 그녀 역시 앞으로 평생 좋아하기로.. (평생 좋아할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있다-_-ㆀ)
더불어 이 영화에 필받아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책도 읽었다.(소피 숄과 비견될만한 로자 룩셈베르크도 생각이 나서 그녀의 책 '사회개혁이냐 혁명이냐'도 다시 집어들었지만 이건 조금 보다가 일단 보류;;;) 소피 숄과 한스 숄의 누이인 잉게 숄이 지은 책이다. 그들의 삶을 알고 싶은 분들은 꼭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정말 한구절 한구절이 주옥같고 감동적인 책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포스팅을 해야겠단 생각에 영화 보고 시간이 꽤 지난 이제서야 포스팅을 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의 책 첫머리에 나오는 말을 옮기며 마치자.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도 살아 남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강하게 살아 남아라. 한 치의 타협도 없이─.
한스 숄이 했던 말이다.
평점은 ★★★★★
p.s 영화는 나치를 다루다 보니 역시 유태인 학살 이야기가 나온다. 이스라엘과 미국이 합세해서 레바논 민중들을 학살하고 있는 지금 세계를 보면.. 참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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