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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promptus
2008. 7. 28. 02:52
파프리카
영화 감상을 쓰는 건 오랜만인 것 같네.
오늘의 작품은 파프리카.
일단 잘 만든 작품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으나)이 워낙 탄탄하고 유명하며 좋은 작품이라고 하니 밑바탕이 잘 그려졌다고 할 수 있고, 곤 사토시 감독 또한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재미있긴 하지만 갸우뚱 하게 만드는 구석도 좀 있다.
몇가지 마음에 안 들었던 점, 혹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점만 간단히 짚겠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多)
일단 이사장의 갑작스런 변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꿈의 세계에 접근하려는 것을 자연주의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배격하던 그가 알고보니 꿈의 세계를 홀로 지배하려는 악마라는 사실은 반전의 묘미가 있을지 몰라도(사실 조금만 관찰력이 있다면 이사장과 오사나이 군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다;;;) 너무 졸렬하다. 또한 악마로서 절대 파워를 자랑하던 이사장을 그때까지 도망만 다니던 파프리카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변신해서 먹어치워버리는 것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두번째는 형사 아저씨의 트라우마가 결국 마초성의 극대화(총기의 사용과 그 후의 열렬한 훗가시)를 통해 극복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비판은 일본 특유의 놀이공원에 대한 추억, 만국박람회적 축제와 집단적 광란 등의 묘사를 통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파시즘적 시각과 연결되면 더욱 곱씹을만한 거리가 있다. 혹자는 결국 그런 파시즘을 주인공과 형사 아저씨가 극복하는 내용이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으나, 파시즘을 마초성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한가? 벌거벗은 처녀가 그 광기를 빨아들이고 꿈의 세계를 되찾는다는 설정 또한 파시즘을 또 다른 파시즘(=상품화된 에로티시즘)으로 흡수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뭐.. 애니메이션 특유의 단순한 선악구도와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일단 이해해두자.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또 다른 자아인 파프리카를 통해 꿈 속에서마저 종횡무진 활약하며, 완벽에 가까운 여성상으로 그려지는 아츠코. 그녀가 인류 전체의 꿈이 왔다갔다하는 절박한 때에 갑자기 자신의 사랑을 찾겠다며 안하던 오바를 떨더니, 추악한 천재 돼지 토키타에게 시집을 가버린다니!
이건 정말 용서가 안 된다! 아니 스토리에서 저게 왜 필요한가? 세상의 덕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저 일본인들의 감성에 맞는 선택이어서? 허허... 참.
(이 부분은 사실 내가 작품 속 아츠시 같은 스타일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기적인 뚱보에게 시집간다는게 싫어서 내는 짜증이다.)
작품의 마지막은 형사 아저씨가 '아이들은 꿈꾼다'라는 영화를 보러가는 것으로 끝난다. 관객들에게 화석화된 어린 시절 꿈의 세계를 다시 찾으라는 감독의 친절한 권유이지만, 결국 매표소 앞에 선 형사 아저씨는 "어른 한 장"이란 말을 내뱉을 뿐이다.
어른인 우리들은 결국 영화관(파프리카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 꿈을 구걸할 수 있을 뿐. 혹은 꿈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한낱 추억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 참.. 의미심장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감독이 마지막까지 날 놀리는 것일까?
평점은 ★★★☆
오늘의 작품은 파프리카.
파프리카
Paprika, 2006
감독 ㅣ 곤 사토시
Paprika, 2006
감독 ㅣ 곤 사토시
아츠시는 아주 괜찮고, 토키타는 매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일단 잘 만든 작품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못했으나)이 워낙 탄탄하고 유명하며 좋은 작품이라고 하니 밑바탕이 잘 그려졌다고 할 수 있고, 곤 사토시 감독 또한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재미있긴 하지만 갸우뚱 하게 만드는 구석도 좀 있다.
몇가지 마음에 안 들었던 점, 혹은 내가 이해하지 못한 점만 간단히 짚겠다. (이제부터 스포일러 多)
일단 이사장의 갑작스런 변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꿈의 세계에 접근하려는 것을 자연주의적인 관점에서 철저히 배격하던 그가 알고보니 꿈의 세계를 홀로 지배하려는 악마라는 사실은 반전의 묘미가 있을지 몰라도(사실 조금만 관찰력이 있다면 이사장과 오사나이 군이 뭔가 꿍꿍이가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다;;;) 너무 졸렬하다. 또한 악마로서 절대 파워를 자랑하던 이사장을 그때까지 도망만 다니던 파프리카가 아무 이유도 없이 갑자기 변신해서 먹어치워버리는 것도 유치하기 짝이 없다.
두번째는 형사 아저씨의 트라우마가 결국 마초성의 극대화(총기의 사용과 그 후의 열렬한 훗가시)를 통해 극복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이러한 비판은 일본 특유의 놀이공원에 대한 추억, 만국박람회적 축제와 집단적 광란 등의 묘사를 통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파시즘적 시각과 연결되면 더욱 곱씹을만한 거리가 있다. 혹자는 결국 그런 파시즘을 주인공과 형사 아저씨가 극복하는 내용이 아니냐고 할 지 모르겠으나, 파시즘을 마초성으로 극복하는 것이 가능한가? 벌거벗은 처녀가 그 광기를 빨아들이고 꿈의 세계를 되찾는다는 설정 또한 파시즘을 또 다른 파시즘(=상품화된 에로티시즘)으로 흡수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뭐.. 애니메이션 특유의 단순한 선악구도와 명확한 스토리라인을 위해서 불가피했다고 일단 이해해두자.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결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또 다른 자아인 파프리카를 통해 꿈 속에서마저 종횡무진 활약하며, 완벽에 가까운 여성상으로 그려지는 아츠코. 그녀가 인류 전체의 꿈이 왔다갔다하는 절박한 때에 갑자기 자신의 사랑을 찾겠다며 안하던 오바를 떨더니, 추악한 천재 돼지 토키타에게 시집을 가버린다니!
이건 정말 용서가 안 된다! 아니 스토리에서 저게 왜 필요한가? 세상의 덕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그저 일본인들의 감성에 맞는 선택이어서? 허허... 참.
(이 부분은 사실 내가 작품 속 아츠시 같은 스타일을 아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가 이기적인 뚱보에게 시집간다는게 싫어서 내는 짜증이다.)
작품의 마지막은 형사 아저씨가 '아이들은 꿈꾼다'라는 영화를 보러가는 것으로 끝난다. 관객들에게 화석화된 어린 시절 꿈의 세계를 다시 찾으라는 감독의 친절한 권유이지만, 결국 매표소 앞에 선 형사 아저씨는 "어른 한 장"이란 말을 내뱉을 뿐이다.
어른인 우리들은 결국 영화관(파프리카 같은 영화를 상영하는...) 같은 가상의 세계에서 꿈을 구걸할 수 있을 뿐. 혹은 꿈은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한낱 추억에 불과하다는 것.
이것 참.. 의미심장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감독이 마지막까지 날 놀리는 것일까?
평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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