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8. 5. 26. 07:53

최후의 보루, 전가의 보도

다들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정보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거죠? 다른이에게 자신의 의지를 위탁한다.
그러면서도 지금 상황이 이러이러합니다, 라는 이야기는 선동으로 치부된다.
정보가 없다지만 진실은 넘쳐나는 세상인데,
대한민국의 내 또래들은, 자신이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은 외면하고 애써 침묵하고 있다.
인터넷상의 논쟁에선 수구적 시각에 온 몸을 담그고는, 중립의 간판을 내건채 눈과 귀를 닫아 걸고 있다.

스크럼을 짜는 기본적인 것도 하나 못해서 한명씩 한명씩 들어내져 잡혀가는 사람들의 정식 명칭은 폭도가 되었다.
인터넷 방송조차 고도의 전문적 기술이 되어 배후의 선동세력을 의심받는 유력한 근거가 된다.
침묵하는 것은 기득권층에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반대의 간단한 사실은 잊어버린채,
집회를 통해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특정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만 걱정한다.
집회를 향해 우매한 대중들의 부화뇌동이라고 자연스레 표현하는 자신의 우월감은 망각하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의 그 몸부림을 일순간에 계몽의식과 영웅심리, 우월감으로 절하해 버린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야기들은 사실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내가 가장 놀라웠던 사실은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이 국민들 모두에게 너무나 당연한 최고의 가치로 내면화되어있다는 것을 발견한 때이다. 기득권자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교묘한 술수는 교육을 통해 보전되고, 자선과 봉사를 통해 포장되며, 언론을 타고 전파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 최후의 보루는 바로 법이다. 기득권층만이 개폐하고 접근할 수 있는 법은 오히려 힘없는 자들이 최후로 기댈 수 있는 곳으로 선전되어 그 위장의 방법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번 집회에서도 집시법과 도로교통법은 그 위력을 그런 식으로 당당히 떨치고 있지 않은가?
결국 규율은 내면화한다. 그것은 고래(古來)로 이어져 내려온 그 당연한 사실이자 법이 공공연히 목표로 한 것이지만, 나를 경악하게 한 것은 그 불법과 합법의 이분법적 굴레를 작금의 내 또래들이 그저 내면화만 한 것이 아니라 논쟁의 장에서 너무도 유연하고 유려하게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느새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 만큼 그 사용이 억제되어야 하고 내밀한 곳에 머물러야 하는 ultima ratio로서의 법과 법논리가 어느새 일거에 모든 불만을 잠재우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영광스런 전가의 보도가 되어 우리 주변을 횡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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