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8. 7. 4. 07:06

슬픈 일

#1.

사고 싶은 책이 너무 많다. 난 유난히 책탐이 많은 편이라... (물론 다른 물건들에도 욕심이 뚝뚝 떨어지지만;) 이미 빌려서 읽은 책도 내용이 좋았다면, 다시 읽지 않을 걸 알면서도 서점에서 만지작거리다가 결국 사고 말거나 적어도 서점(온라인 서점 포함 ㅠ.ㅠ)에 갈 때마다 사고 싶어서 끙끙거리는 것이다.
지금도 역시 마찬가지인데...
문제는, 내가 진정 사고 싶거나 읽고 싶은 책을 정작 요즘은 계속해서 사질 못한다는 사실이다. 대신 보고 싶지 않은 책만을 계속 사고 있으니 이거... 값은 또 왜 그렇게 비싼지 ㅠ.ㅠ 그 때문에 또 내가 갖고 싶은 책을 갖는 것은 또 뒤로 미뤄야하고.
아악,,,
나쁜 상황의 연속이다. 갖고 싶은 책들을 한 온라인 서점의 보관함에 구매해야 할 책, 구매하고 싶은 책, 관심이 있는 책, 한번 볼만한 책, 이렇게 분류를 해 놓고 넣어 놓았는데, 이미 수십권이 들어가있고 좀 있으면 수백권이 되게 생겼다. ㅎㅎㅎ

사고 싶지 않은 책만을 또다시 잔뜩 주문해야하는 슬픈 일을 스스로 행한 후에
그냥 주절거려본다. 흑흑


#2.

위에서 말한 슬픈 상황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내가 하는 일은 헌책방에 가는 것이다. 책이 헌 것인지 새 것인지는 그리 상관하는 성격이 아닌데다 원가의 40~60% 정도 가격에 좋아하는 책을 구매할 수 있으니 천국과 다름 없다. ㅋㅋㅋ
한데 며칠 전에 그 곳에서조차 나를 슬프게 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으니...

때는 2008년 여름, 더워서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다는 말같지도 않은 핑계를 대며 헌책방으로 도피한 오도령의 눈앞에 좋아하는 한 작가의 초기작이 서가에 오롯이 꽂혀있는 모습이 포착된 것이 아닌가!
이미 읽은 책이라 굳이 살 필요가 없잖아, 라는 생각은 잠시. 지금 사지 않으면 결국 새 책으로 비싸게 사게 될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스스로를 세뇌시킨 후 다른 몇 권의 책과 함께 구매하여 당당히 집으로 돌아오고야 말았던 것이었다.
내가 책을 몇 권 들고온 걸 보고는 집에 있던 막내동생의 한 말씀.
"형아, XXXX는 읽은 거잖아?"
"읽은 거지만 갖고 싶어서 사왔어."
막내동생 :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감. 그러나 밤에 들어온 여동생 또한 한 말씀.
"오빠야, XXXX는 왜 샀어?"
"얘들이 같은 질문을 하네;; 걍 갖고 싶어서 샀어."
"XXXX 집에 있잖아?"
"???...!!..??"
"전에 니가 샀잖아. 멍츙이."
"......!!!!!!...그.. 그랬었나? 그러고 보니...ㅠ.ㅠ"

아악, 온라인서점에서 주문하기 전에 '전에 샀던 책인지 확인하기' 버튼을 보고는 "우하하하, 어떻게 자기가 뭘 샀는지도 모르냐? ㅉㅉ" 그러면서 마음껏 비웃었던 나인데...


#3.

책에 관한 슬픈 일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다시 헌책방.
요즘은 시집도 많이 비싸져서 덜컥 사기가 부담스러울 정도의 가격이 되었다. 특히 그 작은 사이즈와 얇은 두께를 보고 있노라면... 함민복 시인이 겸양하시는게 아니라 당연히 그럴만하다고 끄덕끄덕하게 된달까..-_- (무슨 얘긴지 모르시겠는 분은 시인의 '긍정적인 밥' 참조.)
그러나 역시 헌책방에 가면 비록 오래되고 낡고 냄새나고 빛이 바랜 책이나마 싼 가격에 구할 수 있다.(아까도 말했다시피 내용이 중요하지 다른 건 별로 신경 안 쓴다. 물론 새책이고 깨끗하면 더 좋겠지만..) 게다가 시집은 절판된 것도 많고, 시중 서점에서도 잘 팔리고 유명한 몇개만 들여놓지 다채롭게 다 갖다놓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헌책방이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고 지금은 슬픈 일을 이야기하는 거니까...
헌책방에서 시집의 가격은 이천원 또는 이천오백원. 그 날도 동생과 함께 들렀다가 시집을 몇 권 골라왔다. 그런데 집에 와서 펴보니 그 중 한개는 오래전에 나온 거라 정가가 2,000원이라고 적혀있는게 아닌가! ㅋㅋㅋ
물론 지금 그 시집을 새 책으로 사려면 그 서너배의 가격을 줘야하겠지만, 그래도 정가보다 더 비싼 값에 헌책방에서 책을 사게 되다니!!! 이것 또한 슬픈 일이다.


#4.

그러고보니 책에 관한 슬픈 일들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다 쓰고 읽어보니 이건 모두 경제적 빈곤에서 오는 슬픈 일이잖아 -_-
헐헐. 자본주의 사회는 빈자의 의식화를 그리 호락호락하게 용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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