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8. 5. 18. 05:51

시44 - 도보순례

도보순례


                          - 이문재 -


나 돌아갈 것이다
도처의 전원을 끊고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마음껏 등질 것이다

나에게로 혹은 나로부터
발사되던 직선들을
짐짓 무시할 것이다

나 돌아갈 것이다
무심했던 몸의 외곽으로 가
두 손 두 발에게
머리 조아릴 것이다
한없이 작아질 것이다

어둠을 어둡게 할 것이다
소리에 민감하고
냄새에 즉각 반응할 것이다
하나하나 맛을 구별하고
피부를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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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읽고 가장 감동받은 시이다.
너무 좋아서 블로그에 올려놓기가 살짝 싫을 정도이다. 남들 못보고 나만 보도록;;
어울리는 사진들도 많지만, 시선과 감정이 분산되지 않도록 이 포스팅엔 사진도 넣지 않겠다.


이 시는 사실 안도현 시인이 책상이나 컴퓨터 머리맡에 붙여놓고 하루에 세번씩 자신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으라 했다.
난 이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덜컹거리는 마음의 안달을 등지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마음껏 등진다니!!

무엇보다 두 눈을 쉬게 할 것이다
이제 일하기 위해 살지 않고
살기 위해 일할 것이다
생활하기 위해 생존할 것이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마음에 새기기 위해 다시 한번 읽고 써 본다.

어두워지면 어두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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