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promptus 2012. 11. 5. 04:33

피에타

본 지 며칠되서 감상의 느낌이 많이 희미해졌지만,

그래도 대강이나마 평을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 글을 남긴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피에타(Pietà)는 이탈리아어로 슬픔, 비탄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는 저 조각상의 모티브를 차용해서 포스터도 찍고, 영화 내용에도 모성과 마성(복수심), 동정의 교묘한 접점을 찾으려 했지만 그러나 여러 시대, 여러 작가의 피에타 중 굳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활용한 건 조금 아쉬운 감도 있다. 물론 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워낙 조형미나 균형감이 뛰어나고 유명해서 그런거지만, 그런 만큼 영화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미켈란젤로의 저 피에타에서 성모님의 모습은 어머니의 모습으로 보기 어렵다. 오히려 아들보다 훨씬 젊고, 아름다우며 저 표정을 자세히 보면 단순히 눈을 감고 있을 뿐 비탄의 감정을 찾기 쉽지 않다. 미켈란젤로의 다른 피에타상이나 다른 작가들의 피에타상, 그림들을 몇 개만 살펴보아도 성모님의 기괴한 표정과 예수님의 사지가 뒤틀린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그 점에서 저 작품이 얼마나 심미주의적 의도에 치우쳐져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저 조각상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저 피에타 상은 미켈란젤로의 수많은 조각상들 중 유일하게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상이다. 그 이유인 즉, 미켈란젤로는 성당의 주문을 받아 저 피에타 상을 제작했는데 완성 후에도 성당에선 찾아갈 생각도 않고, 돈도 주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성당에 저 조각상을 실어가서 그냥 던져두고 왔는데, 그 때만해도 젊고 무명이던 미켈란젤로의 작품임을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당대 유명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회자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에 격분한 미켈란젤로는 다시 새벽에 몰래 성당에 들어가 조각상의 한가운데 그러니까 성모님 가슴의 띠에다가 '피렌체인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제작(MICHEL. AGELVS. BONAROTVS. FLORENT. FACIEBAT)'이라고 새기고 나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새기고 돌아오는 길에 동트는 새벽의 풍광을 보면서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는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신 하느님도 이 세상에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곳이 없는데, 감히 나 따위가 이름을 남기려 했구나.'하고 나름의 깨달음을 얻고는 그 후로는 자신의 조각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뭔가 너무 훈훈해서 후세에 갖다붙인 티가 좀 나지만...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남겨진 조각이 저것 뿐이라는 건 아무튼 사실이다.

 

각설, 영화로 돌아와서

위의 아쉬움과 함께, 영화는 역시 김기덕스러웠다. 메타포라고 하기도 뭣한 그냥 강렬한 직유, 그리고 그로부터 오는 필연적인 허세와 유치함. 그러나 그런 단점들조차도 무마시키는 강한 흡입력. 김기덕이 바뀐 점은 거의 없었고, 결론 역시 지금까지 김기덕 영화들이 그래왔듯 저게 뭔가 싶은 이상한 봉합으로 끝났다.

음.. 개인적 생각으론 최악의 현실을 보여주는데는 대단히 재능있는 분이시지만, 그에 대한 대안이나 해결 가능성이 전혀 제시되지 않기 때문에 이젠 좀 식상하다는 감도 든다.

차리리 영화 중간의 대사 한 부분 - "내가 돈 받아오라고 했지, 언제 병신만들라고 했어?" 이 영화 전체 내용보다 더 마음에 울림이 있었다. 현대인들의 세상살이와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자세가 저 대사 하나에 다 녹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큰 상 수상 이후의 여러 논란들과 김기덕 감독에 대한 여론 등등을 보고 있자니, 대외적 유명세나 포장이 더 주목받고 그 와중에 본질은 실종되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하다. 마치 균형미와 조형미 때문에 유명하지만, 그 와중에 이름에 담겨있는 슬픔이나 비탄의 의미는 오히려 축소되어버린 저 조각상 같다고 할까. 그 와중에 김기덕 감독은 공명심과 피해의식을 공공연히 드러내는 인터뷰를 계속해서, 작품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자기 이름을 새기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고... ㅎㅎ 이건 조각상 이야기에 너무 억지로 갖다 붙이는 건가?

 

 

평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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