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3. 10. 13. 10:08

이벤트성·작위성이 싫다

한 열흘쯤 전에 고속철 천성산 통과에 반대하는 지율스님께서 천성산 도룡뇽의 이름으로 공사중지가처분소송을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황당해서, 그걸로 글이나 하나 써볼까? 하고 생각을 하다가 며칠이 지나도 언론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안되는 걸 알고 포기를 했나보구나, 생각하고 말았었다.
한데, 금요일인가 결국 공식적으로 보도가 나왔다. 그 기사를 보면 이렇다.

http://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3/09/005000000200309302244169.html

우선 법적인 평가를 하자면 이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당연히 소각하판결이 나오게 된다. 민사소송법상 소를 제기하려면, 그 당사자에 대해 여러 자격이 요구된다. 대략 순서를 정해 정리하면, 당사자능력 - 당사자적격 - 소송능력 - 변론능력 등이 요구되는데, 천성산 도룡뇽의 경우 당사자능력 자체를 가지지 못한다. 소송상 당사자 능력이 인정되는 건 자연인과 법인 정도에 한하기 때문이다.
위의 사안은 행정소송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게 볼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행정소송 중 특히 환경소송에 대해서 환경단체에 한해 특별히 당사자능력을 부여한 예가 미국, 독일 등에서 나타나고 있고 환경권에 대한 높아지는 자각 등으로 우리나라에서도 그에 대해 긍정적 논의가 최근 들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저런 자연물 자체에 대해 권리능력을 인정해 소송 당사자의 지위를 주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이다.

지율 스님은 그렇다고쳐도, 스님과 함께 활동하는 환경단체의 분들이 그러한 사실을 모를리 없다. 그런데 왜 저런 식의 이벤트를 벌이는 것일까? 바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기상천외한 일을 벌여야 언론을 타기가 쉬울테니까.
하지만 난 진보진영과 시민단체들의 저런 식의 작위성과 여론에 호소하는 포퓰리즘영합은 정말로 싫다.(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난 전체적으론 진보로 기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부 활동방식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태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치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여론'이란 것을 지고지선의 절대가치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여론의 힘만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란 거의 없으며, 그래서 그런지 정치적 색체를 띠지 않아도 될 시민단체, 특히 환경단체 같은 곳까지 저런 식의 황당한 일을 기획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론이란 건 실체가 없으며, 믿을만한 것이 못 된다.(이에 대해선 논쟁이 좀 되겠지만.. -_-)
그리고, 다른 방법을 다 제쳐두고 여론에 호소부터 하고 보는 식은, 지금까지는 정치력에 의해 모든 사회 재화들이 조성·분배되었기 때문에 독재에 대항할 별다른 무기가 없었던 시민진영에서 불가피하게 그리고 최후적 수단으로 사용해 온 측면이 있다고 치더라도, 지금처럼 과거에 비해 사회·경제적으로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고 시민들의 의식도 많이 고양된 시대에는 쉽고 편하며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만으로 여론몰이에 나서는 것은 지양되어야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실정상 지금(굳이 이런 조건을 달았다는 걸 강조드린다) 그에 대한 과도한 가치부여는 결국 왜곡된 언론구조와 그 횡포를 강화시킬 뿐인 것이다.

음... 도룡뇽 이야기를 하다가 여론, 정치, 언론 이야기까지 걷잡을 수 없이 이야기가 커져버렸는데^^;;
실은 전에 언론 권력들의 횡포에 대한 생각을 좀 하다가 사회전반의 여론 영합주의가 일정부분 그 원인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좀 했었는데, 도룡뇽 기사를 접하고 나니 그게 떠올라서 조금 적어보았다. (저렇게 쓰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기상천외한 깜짝쇼 같은 것을 참 좋아한다는 생각도 드는데.. 한탕주의도 그렇고.. 그에 대해선 다음에 써보기로 하고!)

우선 결론은 자연스럽고 성실한 것이 보기 좋다는 것이다. 작위적이고 너무 상대의 반응만을 의식해서 하는 일들은 보기에 기분이 나쁘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일 뿐이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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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얼굴'에 전송한 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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