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까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으나, 하루 지나고 나니 그럭저럭 봐줄만은 하다. 개인적으로 선거얘기를 간략하게나마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제 쓰려다가 때려치웠던 것을 다시 끄적여본다.
#2.
이번 선거의 포인트는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달리 '국민에 의한 절대악의 절대 선택'이다. 인터넷 상의 댓글들을 보면 민심은 천심이라느니 하면서 맹자를 한 번 읽어보지도 않은 인간들이 멋대로 설치고 있는데,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맹자의 그 말은 경솔한 국민들의 악과의 결탁을 변호해줄만큼 그렇게 값싸게 이용될 수 있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해묵은 정권 심판의 논리. 김대중 집권 이후 모든 선거와 보궐선거에서 정권 심판을 주창한 이들(알겠지만 한나라당)은 도대체 몇번을 더 정권 심판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사실 대선을 제외한 선거는 '전임자에 대한 심판'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정권에 대한 심판'은 실질적으로 될 수 없다. 그저 국민들의 정권에 대한 의향이 간접적으로 표출될 수 있을 뿐이며 이를 언어적으로 '정권심판'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를 국민들이 믿도록 만든 정치 전술적 조직화는 상당했으니 한나라당에 대한 칭찬(?)은 그 정도 선까지는 해주도록 하자.
#3.
남이 쓴 기사나 베껴대고 정치권에서 나도는 당 발(發) 문건들을 여과없이 그대로 옮겨 적어 주시는데 여념이 없는 현재의 똑똑하신 기자님들은 다들 그냥 지나치고 있지만, 열린 우리당 참패의 원인은 이념적 지향성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한 점에 있다. 이는 국민들의 '인식'과 그들의 '행동'의 괴리를 낳았고 이는 또한 이유없는 신뢰도의 상실로 이어졌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열린 우리당의 대부분의 인사들은 예전 진보세력임을 자임하던 사람들로서 대부분 90년대 초반이후 변절하고 기성정치권에 발을 들인 이들이다. (즉, 좋게 말해 진보주의자 → 개혁주의자정도가 되었다는 말인데, 이는 잘 모르는 사람들 - 일반 국민들을 포함한 -이 보기엔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좌파 → 우파가 되는 그야말로 '변절'이다. 한나라당에도 극소수이긴하지만 개혁주의자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 이해가 빠르려나?) 하지만 이들이 항상 내세우는 건 예전의 그 보잘것없는 진보의 이력이었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그들이 보여주고 있는 우파적인 정책들과의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크게 보아 정책적으로, 그리고 개개인의 현재 성향상 전형적 우파정당인 열린 우리당 자체가 멋모르는 일반 국민들에게 좌파라고 낙인찍히는 계기도 되었다.
이렇게 되니 결과는 뻔하다. 아는 사람에게도 나쁜 놈이 되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나쁜 놈이 된 것이다.
#4.
어제 오마이뉴스의 한 기사를 보고 확 꼭지가 돌았었는데, 한 시사평론가란 놈이 이번 선거의 원흉은 노무현이라느니 하면서 모든 과(過)를 뒤집어 씌우는 것을 보고서였다. 참.. 저런 놈도 밥은 먹고 다니는구나 싶은데 -_- 노대통령 옹호를 하는게 그다지 달갑지는 않다만, 손민한도 그제 1과 3분의1이닝동안 7실점하고 내려가도 바로 그 다음날 '손민한을 위한 변명'이란 기사까지 올라오는 마당에, 대통령을 위한 변명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게 참 안쓰러워서 몇 자 적어보려 한다.
일단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사람에게 모든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는 걸 좋아한다. 이런 성향은 당과 이념을 가리지 않는다. 예를 들자면, 김영삼 때의 경제의 실패 - 이는 물론 김영삼이 무능했던 탓도 있지만 그 책임은 정부 고위관료들과 집권여당이 함께 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경제파탄하면 김영삼이며, 실제로 모든 욕과 정치적 책임은 김영삼 혼자 십자가를 지고 떠났다.(물론 억지로 진 십자가였지만;) 그 결과 한나라당은 물론 그 때의 고위관료들도 지금까지 승승장구, 호의호식하고 있다. 국민들은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또, 한나라당 입장에서 2번의 정권창출 실패 - 이는 물론 이회창의 개인적 문제도 있었겠지만 그 책임은 당이 함께 지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한나라당 지지자 또는 조선일보 지지자(?)들은 그 모든 것이 이회창 개인의 탓인 듯 몰아붙인다. 실제로 모든 욕과 정치적 책임은 이회창 혼자 십자가를 지고 떠났다. 그 결과 그 당시 이회창 따까리들은 아직까지도 호의호식하고 있으며 어제 선거에서 만세를 부른 놈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국민들은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정운영에 있어서 책임은 노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져야하겠지만, 얼토당토않게 선거결과를 책임지라니? 국정운영조차도 대통령 개인의 책임만을 물을 수는 없다는 내 입장에서 보기엔 정말 개풀뜯어먹는 소리다. 항상 변명이나하고 남에게 뒤집어씌우는 자들, 제발 좀 떠나라.
더 나아가면, 이번 선거는 노대통령이 멋대로 되라, 하고 아예 손을 떼버린 선거였다.(물론, 이렇게까지 참패할 줄은 몰랐겠지만;) 내가 보기에 지난해 말의 당-청 대격돌 이후로 노대통령은 당에 대해선 아예 미련을 버린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에도 정말 정동영 씨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지 않았나? 일단 자신과 김근태 의원, 정동채 의원 등 스타급들을 당으로 다시 보내줬고, 정동영 씨의 눈엣가시인 천정배 의원와 유시민 의원, 그리고 인기가 폭등하던 정세균 의원은 각료로 불러들였다. 게다가 내세울거라고는 통일부 장관, 그 민망한 이력밖에 없는 그를 위해 북한에 '퍼주기'라는 온갖 비난을 다 들으면서 계속 지원했고, 자신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DJ의 방북까지도 성사시켜주었다.(물론 DJ의 배신으로 선거엔 별 영향이 없었다만;) 게다가 연초에 한나라당한테 굽실거리기도 해줬고-_- 급기야는 노통이 그렇게 신임하던 이해찬 총리까지 자르고 정동영 씨가 해달라는 대로 또 한명숙 총리까지 지명해줬으며, 한미FTA도 '무리하게' 시작해줬고, 강금실 전 장관까지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시켜줬으며, 진대제 전 장관도 억지로 경기지사 후보로 넣어줬는데;;;;; 주워섬기자면 사실 끝이 없다. 열린 우리당 내 스스로 '실용주의자'라고 칭하는 또라이들, 그들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국정운영에서도 글쎄;; 내가 보기엔 부동산 가격이 폭등한 것만 욕먹을 만 한 것 같은데(다른 문제나 국민적 불만들도 결국 거기서 기인하는게 대부분이다).. 그 조차도 부동산 거품제거를 막고 있는 건 결국 한나라당이란 사실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는 현실을 봤을때, 노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별 설득력이 없다. 단지 죄라면 너무 권력을 다 내놓다보니 전 국민적 만만한 놈, 아무때나 씹는 껌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게 죄랄까.. 아무 하는 일도 없이 그냥 노는 백수들이 자기 신세마저도 노대통령 탓이라고 뒤집어씌우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말이다.
#5.
선거이야기로 돌아와서, 기대는 별로 안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강금실 씨의 낙선은 참 안타깝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괜찮았던 사람을 꼽으라면 난 단연 강금실 씨를 꼽을 것이다. 여성이라는 강점만으로도 괜찮게 봤던 사람이지만, 그에겐 초연함이 불러오는(?) 자연스런 신뢰감 같은게 생겼는데, 특히 선거기간 중에 보여준 솔직담백하면서도 당찬 모습들과 72시간 마라톤 유세라는 꽤 감동적인 이벤트는 아, 잘못보진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새삼 들게 했다. 이를 이미지 선거라느니 하면서 어디(?) 식으로 몰아붙인다면 별로 대꾸해주고 싶은 생각조차 없다만, 그녀의 선거운동을 조금만 찬찬히 살펴보았더라도 그런 소리는 하기 힘들 것이고, 누구처럼 "얼마나 쓸 얘기가 없고, 단순히 아줌마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으면, 선거홍보물에까지 철인3종경기 완주사실과 사진을 떡하니 넣어놨을까?"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어떤 한심한 사람의 이미지 정치와 비교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6.
아무튼 위에서 말한 모든 이야기들을 다 살펴보아도, 그러나! 왜 국민들이 절대악을 절대 선택했는지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이건 며칠 전에도 썼던 바지만;
결국 가능한 설명은, 국민 의식이 그만큼 수준이 낮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썼던 '5.31 - 목불인견'이란 글에서의 그 인용문 정도일까.
어쩌면 국민 대부분은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 현상황에서, 파우스트의 심정이 되어 악과 결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내기는 자신의 영혼 즉, 생명을 걸고 한 것이었고, 결국 파우스트는 인생의 의미를 찾았으나 쓰러져 죽는다. 국민들은 우리 현대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이전의 비슷한 예들을 까맣게 잊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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