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미FTA 본협상을 시작했다고 한다. 참 착잡하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난 예전 강성노빠(?)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그 '강성'이란 딱지를 떼버리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한미FTA 추진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미국과 FTA를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세계 최강, 최악의 깡패와 맞장떠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설혹 맞장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괜히 깡패소리 듣나? 실력으로 안되면 온갖 꼼수랑 비열한 짓을 가리지 않는 자들이다. 더구나 남북 분단 상황이라는 원초적 한계를 가진 우리나라가 무슨 수로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겠는가? 지금도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하는 마당에..
게다가 우리가 어느정도 이득을 본다고 하더라도 그 이득은 결국 부자들의 것에 불과하다. 아래에서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경제사적으로 FTA는 부자들의 새로운 도구이기 때문이다. 노통은 정녕 미쳤는가? 그가 말한 양극화 해소라는 것이 이렇게 일천한 경제 인식에 바탕을 둔 것이었나?
왠만한 일이면 그냥 한번 냉소해주고 말아도 되지만, 이건 정말 걱정이 된다. 내가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상당히 배척하는 인간이긴 하다만;;; 그래도 씨니컬한(?) 애국심은 나름대로 상당히 가지고 있단 말이다. -_-
#2.
하필이면 요즘 골라잡고 읽은 책이 촘스키 교수의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촘스키의 신자유주의 비판』이었다. 촘스키의 강연과 기고문들을 모은 책인데.. 98년 작이라서 꽤 오래되긴 했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바로 NAFTA로 인해 초래된 멕시코의 피폐한 실상을 심층적으로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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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신자유주의의 역사도 좀 다루고 있고, 깡패 미국의 진면목도 보여주고 있으며, 어제 퍼다놓은 'OpenWeb운동에 대하여'란 글과도 관계가 있는 내용들도 약간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한번 읽어 보시라. 강연 같은 걸 모아놔서 좀 장황한 면이 있고, 비꼬는 투를 제대로 번역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촘스키 교수가 괜히 유명한 게 아니란 걸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와 관련해 주목할 만한 사실 한가지는, 촘스키는 이 책에서 중남미의 실패와 피폐화를 동아시아(그러니까 대표적으로 우리나라)의 성공, 외환위기의 극복과 대비시키면서 그 차이의 원인을 정부가 부유층의 해외 자본유출시도를 어느정도로 통제해냈느냐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설득력이 있는 이 분석은 우리나라 사람으로서 약간 우쭐함을 느끼게도 해주지만, 그러나 이 책이 쓰여진 98년 이후 외환위기를 극복한다는 명목하에 강대국들, 그리고 금융과 결합한(또는 스스로 금융권이란 탈을 쓴) 투기자본들의 압력에 의해 우리나라가 자본의 해외투자와 송금 등을 점진적으로 전면 허용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오히려 모골이 송연해지도록 만든다.
#3.
난 근본적으로 사회과학을 믿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꼴통에다 골고루 썩기까지한 주류 언론계에서야 FTA찬양으로 일관할 수 있다고 쳐도, 학계에서도 마찬가지로 FTA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장및빛 전망 일색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경제사학을 조금이라도 읽었거나, 국제통상 또는 국제기구 아니면 하다못해 국제법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화' 즉, globalization이라는 구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과학 - 그 중에서도 경제학은 정말이지 가장 못 믿을 영역이다.
대강 정리해보자면(자본의 흐름을 결과적으로 정리한 것이고, 개인적인 정리이므로 어떤 사상적 체계는 없음에 유의-_-), 서유럽에서 상업'자본'이라는 것이 생겨난 이후 지금까지 약 4단계의 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있다. 첫번째가 자국의 노동력을 착취하던 시기. 이 시기는 시민의식의 성장과 민족주의의 대두로 인해 자연스레 제국주의로 이행한다. 제국주의 시대는 시장의 확대와 함께 자국의 착취거리가 남지 않았거나 그런 것에 어느정도 부담을 느끼게 된 자본이 신세계로 진출해 마음껏 착취를 일삼은 시대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세계대전으로 인해 제국주의의 종말을 맞은 뒤에는 이런 자본의 광기 상태가 한풀 꺾인다. 일시적으로 정치학계에서도 이상주의가 대두하였고, 국제무역에 있어서도 브레튼우드 체제를 설계하면서 미-영 등 선진국들 스스로가 상품무역은 자유화하되, 자본이동은 차단하게 된다.(지금 우리가 보기엔 이게 그나마 좋아보이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강대국들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라고 그들에게 받아들여졌었다.) 이 상태에서 나온 것이 GATT체제다.(물론 GATT체제도 미국이 지들이 만들어놓고, 불리하다 싶으니까 말을 싹 바꿔 국제기구화를 끝내 거부해버린 기형적 체제이긴 했다.) 그리고 이런 상태가 냉전도 끝난 마당에 강대국들의 '자본'들을 잡아두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결국 투기성 자본들을 모두 제멋대로 풀어주기로 하는 현행 WTO체제 - 즉, globalization 시대로 이행하게 되었다. 결국 4단계란 (강압에 의한) 자국 노동력 착취 → (강압에 의한) 타국 노동력 착취 → (자본에 의한) 자국 수탈 → (자본에 의한) 타국 수탈로의 변화이고, 이는 2세기 전과 비교해서 착취의 방법이 더 세련(?)되어지고 그에 비례해 더 악랄해졌다는 말에 불과한 것이다. (너무 계급적 인식에 바탕을 둔 것 아니냐고 욕하지 마시라. 나도 요즘 사회에서 계급 기초로만 세계를 바라보는 것은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나 그렇게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장면도 있는 법이다.)
하지만 학문의 영역에서는 이런 긴 호흡의 연계성과 시대적 맥락을 잘 다루지 않는다. 당장의 경제성과 당장의 (조작-왜곡된) 통계에 집착하며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그것은 사람들의 행복이나 삶의 질에는 어떠한 도움도 못 주었고, 사후의 또다른 설명만을 낳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자꾸 글이 길어지는데 이 얘기는 아까 말했듯이 다음에 다른 글에서 본격적으로 써보기로 하고, 결국 위에서 말했듯이 FTA는 위 4번째 단계에서의 자본 - 대부분이 투기성인 - 의 무분별한 국제 경제교란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물론 내 이런 설명이 상당히 편향되어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고-_-, 우리나라가 FTA를 통해 수혜를 받을 부분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이 그건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가진자들에게 다시 한번 국가적인 혜택을 내리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설혹 부자라도 우리 부자가 혜택을 받지 않느냐는 논리도 있을 수 있으나(전형적인 조선일보식의 논리. 그 매체들에 매일 실리는, 어느 대기업이 어마어마한 공장을 지었다느니 하는 얘기에 조빠들은 그야말로 열렬히 열광한다. 그 기업들과는 일절 관계없는 한낱 소시민에 불과한 사람들이 말이다.) 그 부분조차도 우리(?)에겐 이익이지만 결국 다른 나라 사람들의 피땀을 빼온 것에 불과하다. 상품무역 자유화는 고전경제학 이론대로 적절한 균형에 다다를 수도 있으나, 자본의 이동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이든 직접적이든 국제사회에서 힘(무력)을 수반하며 이는 결국 균형에 다다를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4.
머리가 나쁘니 간단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네 -_-ㆀㆀ 죄송..
아무튼 한미FTA는 정말 쓸모없이 추진되고 있다. 이미 우리 시장은 대부분 개방되어 있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투기자본의 놀이터를 확실히 보장해주기 위한 의미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제시하는 근거도 빈약하다. 개방하면 경쟁력이 높아진다? 웃기는 얘기다. 경쟁력은 커녕 대부분은 아예 죽는다. 아무리 실력이 뒷받침되더라도 경제에서 '규모'를 이길 것은 없기 때문이다. 투자가 활성화된다? 물론 돈이 들어오긴 할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 당시 경험했다시피 그 '투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 위해 오는 투자가 아니다. 이미 있는 것을 쓸어먹는(그리고 대부분은 결국 우리에게 비싼 값에 다시 팔아먹는) 투자에 불과하다.
결국 이번 일의 목적은 하나다. 의사결정과정에서 또다시 국민을 소외시킨 채 부자들이 '수단'을 손에 넣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비단 미국의 부자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다국적 기업이라는 허울좋은 말로 포장된 기업 내부거래는 이미 우리 기업에게도 일상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목적의 결과는? 알다시피 완벽한 양극화다. 정말 내가 그나마 건전한 보수주의자라고 믿고 있는 노통이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ㅠ
이번에 KBS스페셜에서 했던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 이란 프로그램을 한번 보시기를 권한다.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명과 암'이 아니라 '명과 아아아아아아아아암'을 다루고 있지만ㅋ 미국이란 국제 깡패에게 무력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잘못 걸리면 어떻게 되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굳이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프로그램에서 멕시코의 살리나스 대통령이 한 말,
"간단히 말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사회의 덜 가진 자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입니다."
참.. 우리나라의 어떤 집단이 하는 어떤 얘기랑 어쩌면 그렇게도 똑같을 수가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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