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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소년이 서 있다
#1.
크리스마스이브에 선물도 여러가지 준비하고, 좋은 영화도 예매하고, 괜찮은 식당도 예약했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고 다 좋았다가, 마지막에 밥을 먹는데 서빙을 해주는 많아야 스물한두살이나 되었을까? 그네들이 자꾸 눈에 밟혔다. 식당을 나와서 주상복합건물의 1층으로 내려왔더니 한 아주머니께서 로비를 열심히 걸레로 닦고 계셨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기에 기어이 건물을 나서며 여사님께 한말씀 올리고 말았다.
쥐뿔도 잘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우리는 크리스마스이브라고 희희낙락했고, 저들은 일년 중 가장 들뜬 날에 억지로 노동을 하였노라고.
#2.
그랬더니 여사님께서 니 그런 소리는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화를 벌컥 내셨다. ㅠ.ㅠ
너는 가만보면 자본주의의 혜택을 누릴 건 다 누리면서, 말로는 항상 성인군자처럼 떠벌리는 가식으로 똘똘뭉친 위선자라고. ㅠ.ㅠ
내가 저런 이야기를 가끔하는 편이긴 하지만, 이렇게 혼이 날 일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급당황할 수 밖에 없었고 ㅠ.ㅠ 주섬주섬 변명을 늘어놓았다. 여사님의 대답은 "그래서 니가 그걸 바꾸기 위해서 뭘 하고 있는데?"
아아, 그래. 뭐라고 몇 마디 더 지껄였지만, 난 마음 속으로 진심 승복했다. 통렬하구나.
(내가 강하게 키우긴 했지만 ㅠ.ㅠ 여사님이 이렇게 강해질 줄은 몰랐다;;; 위 내용과 별개로 앞으로 고생길이 훤하구나~)
#3.
최근에 스스로 나 자신에게 놀랄 일들이 많이 생긴다. 얼마전에는, 아니 지금도.. 본의 아니게 알게 되었지만 나도 결국 학벌사회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남에게 과시욕이 좀 있고, 말이 앞선다는 사실은 스스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지독하게 허풍쟁이인 줄은 몰랐다. 남에게 눈살 찌푸리며 욕하던 일들을 결국 인생의 기로에 서고, 진로의 위기를 맞게 되자 나 역시 똑같이 자행하고 있다. 심지어 이걸 알아도, 고쳐야겠다고 마음을 먹는 것조차 어렵다.
#4.
내 인생이 완벽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알면서도 완벽한 인격체로 보이고 싶어하는 것 또한 과시욕의 발현일 것이다. 그래서 위에 쓴 것 같은 고민과 반성을 하면서 요즘 느끼는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진 못해도 최소한 나의 철학을 가지고 일관된 신념을 가지고 그에 따라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난 남들이 선망하는 걸 그대로 따라다니고, 그걸 운좋게 이루어 인정을 받으면 '이게 좋은 건가 보다'하고 내 인생을 대충 막 살아 온 것 같으니까... ㅠ.ㅠ
그런데 그 철학을 가지는 것도 쉽지가 않다. 물론 지금 내가 가질 철학이나 신념 또한 완벽한 것일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이런 고민과 반성의 과정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이가 계란 한판에 다다라서야 이런 이야기를 하는게 매우 우습고 민망스럽지만, 난 이제서야 이런 고민을 비로소 진지하게 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굳이 여기에 써 둔다. 여러분들께선 그저 저기 나쁜 소년이 또 하나 서 있구나, 이렇게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 허연 -
세월이 흐르는 걸 잊을 때가 있다. 사는 게 별반 값어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파편 같은 삶의 유리 조각들이 처연하게 늘 한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무섭게 반짝이며
나도 믿기지 않지만 한두 편의 시를 적으며 배고픔을 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랬다. 나보다 계급이 높은 여자를 훔치듯 시는 부서져 반짝였고, 무슨 넥타이 부대나 도둑들보다는 처지가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외로웠다.
푸른색.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더럽게 나를 치장하던 색. 소년이게 했고 시인이게 했고, 뒷골목을 헤매게 했던 그 색은 이젠 내게 없다. 섭섭하게도
나는 나를 만들었다. 나를 만드는 건 사과를 베어 무는 것보다 쉬웠다. 그러나 나는 푸른색의 기억으로 살 것이다. 늙어서도 젊을 수 있는 것. 푸른 유리 조각으로 사는 것.
무슨 법처럼, 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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