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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ndom Thoughts
2008. 7. 22. 01:26
단상
#1.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 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 나무 씨앗 투성이었다. 그런데 바오밥 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앨 수가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이 너무나 작은데 바오밥 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이다.”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그 글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무서운 씨앗은 일찍 손을 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씨앗은 뿌려졌다. 미처 일찍 손을 대지 못했다. 아니, 대고 싶지 않았다.
배운 것은 소용이 없구나.
이제 문제는 별의 크기이다.
나의 마음은 수많은 바오밥 나무를 견뎌낼 만큼의 크기를 가졌는가?
아니, 사실은 별의 크기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2.
빗방울 하나가
- 이시영 -
빗방울 하나가 가지 끝에 매달려 오전 내내 지지 않고 있다.
아, 바람이 불 때마다 온 나무숲이 신선하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창비, 2007.
비도 좋아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빗방울 하나도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바람이 불면 그 청량감에 내 마음이 두근두근하였다.
#3.
불면의 일기
- 최영미 -
어떤 책도 읽히지 않았다
어떤 별도 쏟아지지 않았다
고통은 이 시처럼 줄을 맞춰 오지 않는다
내가 떠나지 못하는 이 도시
끝에서 끝으로 노래가 끊이지 않고
십년보다 긴 하루가 뒤돌아 제 그림자를 지워나갈 때
지상에서 마지막 저녁을 마시려 버스를 탄다
밤은 멀었지만 밤보다 더 어두운 저녁에
차창가에 닻을 내린 한숨이 묻어둔,
그 의미를 해독하지 못해 아직도 낯선 과거를 불러낸다
서로 빠져나오려 싸우려는 기억들이 서로를 삼키는 시간
왜?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것들을...용서하지 못하는가
잃어버린 삶의 지도를 찾아 그리는
눈동자 속에 흔들리며 떠 있는 나무 한 그루, 병든 잎들이 바람에 몸을 떨며 아우성친다
얼마나 더 흔들려야 무너질 수 있나
우리가 변화시킨 세상이, 세상이 변화시킨 우리를 비웃고
총천연색으로 시위하는 네온사인 불빛들이 멀리 하늘의 별을 비웃고
딸꾹질하듯 저녁해 어이없이 넘어가는데
지난날의 들뜬 노래와 비명을 매장한 뒷골목을 순례하며 두리번거린다.
조각난 상념들을 꿰맞추며 두리번거린다.
아, 차라리, 온전히 미치기라도 했으면...
읽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을 웃어, 넘기라도 할 텐데
이해받지 못한 가을이 저 혼자 깊어가고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는 시가 완성되었다
지금은 불면의 밤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간혹 흔들려야 할 곳에서 흔들리지 못했고, 무너져야 할 곳에서 무너지지 못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흔들렸으며, 무너지지 말아야 할 곳에서 무너졌다.
그런 생각들이 조각난 상념들을 다시 꿰맞추며,
나는 다시 두리번거리고, 고민하고, 이해받지 못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는 짧은 생각들이 끝을 맺기를,
아. 마음이 글을 내지 못한다.
사실 이건 누구를 향하는 글일지도 모른다.
읽혀지지 않는 책은 펼쳐져 있고,
쏟아지지 않는 별은 구름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난 퍽이나 유치한 사람이구나.
#4.
한바탕 태풍과 함께 장마는 끝난 것인가?
무릇 비 그치면 산책을 해야하는 법이다.
“어린왕자의 별에는 무서운 씨앗들이 있었다. 바오밥 나무의 씨앗이었다. 그 별의 땅은 바오밥 나무 씨앗 투성이었다. 그런데 바오밥 나무는 너무 늦게 손을 대면 영영 없앨 수가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그래서 별이 너무나 작은데 바오밥 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고 마는 것이다.”
<어린왕자>를 좋아한다.
그 글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무서운 씨앗은 일찍 손을 대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씨앗은 뿌려졌다. 미처 일찍 손을 대지 못했다. 아니, 대고 싶지 않았다.
배운 것은 소용이 없구나.
이제 문제는 별의 크기이다.
나의 마음은 수많은 바오밥 나무를 견뎌낼 만큼의 크기를 가졌는가?
아니, 사실은 별의 크기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2.
빗방울 하나가
- 이시영 -
빗방울 하나가 가지 끝에 매달려 오전 내내 지지 않고 있다.
아, 바람이 불 때마다 온 나무숲이 신선하다.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창비, 2007.
비도 좋아한다.
내가 알고 있는 빗방울 하나도 오랫동안 매달려 있다.
바람이 불면 그 청량감에 내 마음이 두근두근하였다.
#3.
불면의 일기
- 최영미 -
어떤 책도 읽히지 않았다
어떤 별도 쏟아지지 않았다
고통은 이 시처럼 줄을 맞춰 오지 않는다
내가 떠나지 못하는 이 도시
끝에서 끝으로 노래가 끊이지 않고
십년보다 긴 하루가 뒤돌아 제 그림자를 지워나갈 때
지상에서 마지막 저녁을 마시려 버스를 탄다
밤은 멀었지만 밤보다 더 어두운 저녁에
차창가에 닻을 내린 한숨이 묻어둔,
그 의미를 해독하지 못해 아직도 낯선 과거를 불러낸다
서로 빠져나오려 싸우려는 기억들이 서로를 삼키는 시간
왜? 지나간 것들은... 지나간 것들을...용서하지 못하는가
잃어버린 삶의 지도를 찾아 그리는
눈동자 속에 흔들리며 떠 있는 나무 한 그루, 병든 잎들이 바람에 몸을 떨며 아우성친다
얼마나 더 흔들려야 무너질 수 있나
우리가 변화시킨 세상이, 세상이 변화시킨 우리를 비웃고
총천연색으로 시위하는 네온사인 불빛들이 멀리 하늘의 별을 비웃고
딸꾹질하듯 저녁해 어이없이 넘어가는데
지난날의 들뜬 노래와 비명을 매장한 뒷골목을 순례하며 두리번거린다.
조각난 상념들을 꿰맞추며 두리번거린다.
아, 차라리, 온전히 미치기라도 했으면...
읽고 싶지 않은 이 세상을 웃어, 넘기라도 할 텐데
이해받지 못한 가을이 저 혼자 깊어가고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는 시가 완성되었다
지금은 불면의 밤이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나는 간혹 흔들려야 할 곳에서 흔들리지 못했고, 무너져야 할 곳에서 무너지지 못했다.
흔들리지 말아야 할 곳에서 흔들렸으며, 무너지지 말아야 할 곳에서 무너졌다.
그런 생각들이 조각난 상념들을 다시 꿰맞추며,
나는 다시 두리번거리고, 고민하고, 이해받지 못한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아무에게도 향하지 않는 짧은 생각들이 끝을 맺기를,
아. 마음이 글을 내지 못한다.
사실 이건 누구를 향하는 글일지도 모른다.
읽혀지지 않는 책은 펼쳐져 있고,
쏟아지지 않는 별은 구름 뒤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난 퍽이나 유치한 사람이구나.
#4.
한바탕 태풍과 함께 장마는 끝난 것인가?
무릇 비 그치면 산책을 해야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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