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ndom Thoughts 2008. 2. 21. 12:13

詩41 - 생애의 지도

생애의 지도


                                                                       - 박주택 -



모든 길들에게 나를 데려가주기를 기원한 적이 있었으니

그 수많은 집들 너머 어느 낮은 언덕 아래 덤불 우거진

집에는 불꽃이 타올랐다 그곳에는 생애를 기록한 책이 먼지에

뒤덮인 채 숨을 죽이고 길은 저녁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 길에 강이 있었다 그 곳에서는 꿈들이 눈물 없는 체념을 배우고

생애의 지도에는 이름이 새겨지기도 했다

나 또한 밤이면 그 무엇을 이기지 못해, 슬픔이 고여 있는

수척한 지하실의 층계를 밟으며 내려가기도 했었으니

추함이 서랍과 장롱을 채우고 게으름이 다락을 채웠다

비가 내리고 낙엽이 물에 젖을 때

추억들은 물에 젖어 타오르지 않을 것이다

장님처럼 헤매며 강가에 앉아, 운명이 먹어치우는 시간을

보며 삐걱거리는 길들에게 말을 붙인다 여기 운명에

버림 받은 자 길에 주저앉아 노래를 흥얼거린다 마침내

나를 데려가주기를 열망한 집들에게 버림받고 비가 내리는

강가에 앉아 이름을 비천한 생애의 지도에 새기노라



<카프카와 만나는 잠의 노래> 중


=========================================================

박주택 교수의 시는 어느 것은 내 마음에 너무 들어서 일순간 정신을 마비시킬 정도로 좋고,
어느 것은 내 마음에 너무 들지 않아 혐오스러울 정도고..
그렇지만 그 극단적인 양상이 또 아주 마음에 들고.

이건 내가 요즘 너무 극단적이기 때문이야!

'Random Though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42 - 하루 내내 비 오는 날  (0) 2008.04.25
관악산에 가 보자!  (0) 2008.04.22
초속 5센티미터 ending  (7) 2008.02.01
詩32 - 옛 노트에서  (4) 2007.08.19
벌써 한달  (0) 20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