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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어제밤, 정확하게는 오늘 새벽.
방에서 공부하다가 너무 더워 잠시 창문을 열어놓았더니 방충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레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자잘한 벌레들이 책장 위로 후드득 떨어져 내리길래 놀라서 얼른 다시 창문을 닫았는데,
방충망의 틈새로는 도저히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크기의 파리 한마리가 이미 들어와 있었다.
할아버지가 소를 키우셨기 때문에 어릴적부터 왕파리에는 무감각한 나지만,
이 녀석이 공부하는 사람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꽤 큰 소리를 내고, 이따금 얼굴로 돌진까지 해오는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방 밖으로라도 내보내려고 후쳤지만 방에만 불이 켜져 있어서인지 계속 돌아오는게 아닌가.
결국 처단하기로 결정하고 신문지를 돌돌 말아왔다.
그 후 새벽 3시경까지 몇 시간에 걸쳐 나와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인 파리께선,
그러나 결국 살아남는데 성공했고, 패배한 난 조용히 방으로 가 잠을 잤다. 내 기필코 내일은 벌레잡는 전기채를 주문하리라고 마음먹으면서.
...
아침에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려고 보니 그 녀석이 방에서 나와 거실 창문에 붙어있었다.
때려잡을까 싶은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지도 나가고 싶어서 저러는 거지 싶어
거실문을 여니 어느새 베란다 창문에 가서 붙는다.
또 베란다 문을 열고 방충망도 열어주니 기다렸다는 듯이 쏜살같이 날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허, 파리와의 이심전심인가.
사람 사는 것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채 어쩌다 보니 세상에 던져졌는데 누군가 날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얇은 방충망과 유리 창문만 간단히 벗겨내면 자유를 찾을 수 있겠지만 쉽게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
하하, 점점 한 마리 똥파리가 되어가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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