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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詩50 - 승무
승무(僧舞)
- 조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청록집(靑綠集), 을유문화사,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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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침에 가끔씩 안산(鞍山)을 오르내리고 있다. 300m 정도 되는 야트막한 산인데 높이에 비해 산이 꽤 크고 약수터가 많아 산책삼아, 운동삼아 다니기 알맞은 산이다.
연세대 기숙사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빛으로 번쩍번쩍하는 노천 불상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그 앞에 조지훈 선생의 시비(詩碑)가 있고, 저 '승무'가 씌어 있다. 개신교 학교인 연대 뒷동산에 거대 불상이 서 있는 것도 그렇고, 고대(高大) 정신의 화신이라 할 수 있는 조지훈 선생의 시비가 뜬금없이 서 있는 것도 그렇고, 뭔가 상당히 아이러니한데^^
아무튼 몇 번 그냥 스쳐 지나다가 오늘 새삼스레 앞에 서서 시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고 감동을 심하게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시일테지만,
교과서에 실려서 공부 대상으로 볼 때는 이렇게 좋은 시인 줄 미처 몰랐었다. 이런 시를 가히 '絶唱'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괜히 교과서에 실려서 빛이 바랜 듯한 느낌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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