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Essay 2004. 11. 6. 23:16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오늘은 날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새벽부터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내 생활은 똑같았다.
학교는 토요일이라 평소보다 훨씬 더 조용했다.
그 바람에 아침에 오랫동안 학교를 거닐었다.
정말이지 너무 청명한 날씨에 학교의 모든 것들이 반짝반짝 거렸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은 너무 투명해서 내 영혼이 쑥 하고 빨려올라가 물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대신 난 숨을 후 - 하고 내쉬어 우주를 향해 띄워 올렸다. 그 숨은 지금쯤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를 저어가고 있을 것이다.
그 녀석이 길을 잘 찾을까? 그런 건 잘 모른다. 애시당초 길 따위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오후에도 바깥 바람이랑 놀러나갔다.
원래 아침에 너무 청명하면 낮에 기온이 과등하면서 오후엔 청명한 기가 사라져버리는 일이 많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너무도 맑고 청명해 높은 곳에 있으니 서울의 구석구석에 다 시선이 닿았다.

아, 이렇게 좋은 날에 갈 곳이 아무데도 없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내 젊은 날이 조금 서글프다. 원래 난 이런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지가 멋대로 슬슬 나서서 내 머리로 기어올라와 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오랜만에 생각하였다. 단지 맑은 날에 놀러나가고 싶어서 여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니, 실제로 여자친구가 있었다면 정말 슬퍼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때 내 몸을 감싸고 도는 바람과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날 좋아하는 사람이 없는 건 그렇다고 쳐도, 왜 아직도 젊은 주제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일까?
내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느니 하는 생각을 해볼까 하다가 한심해서 때려치웠다.

아침에도, 오후에도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고 계속해서 기대했지만
결국 오늘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청명한 날은 원래 그런 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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