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포스팅을 하면서 괜히 사진을 받으면 산행기를 또 올리겠다고 쓰는 바람에... -_-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고; 왠지모를 책임감이 느껴져서 결국 또 올린다. (내가 함정을 파고 스스로 거기 기어들어가 얌전히 누운 꼴이랄까.. ㅠㅠ)
블로그에 내 사진 올리는 걸 극도로 기피해왔는데 사진을 보니 나랑 지환이형 얼굴밖에 없어서 이것 참 난감하네 ㅋㅋ
출발 전 지환이형과 기념샷. 지리산에 갈때는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면 된다. 10시 50분 출발, 새벽 3시 23분 구례구역 도착.
구례구역에 내리면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거기서 내리는 사람들은 다 지리산 가는 사람들이고 택시 아니면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으므로 얼른 빠져나와서 타는게 좋다. 안 그러면 산에 도착하기도 전에 1시간동안 서서 가면서 준비운동(?)을 철저히 하게 된다.
출발지인 성삼재에 도착. 새벽 5시인데도 밥도 먹을 수 있고, 라퓨마 매장도 있어서 등산용품도 구입할 수 있다. 라퓨마 매장 아줌마가 20% 할인을 해준다고 하셨는데 정가에서 20% 할인을 해주는건지, 아님 산위에 있어서 물건 값에 프리미엄이 붙어있는데 그걸 20% 깎아 원가 정도에 판다는건지... 알 수 없다.
지리산 노고단 대피소 6시경.
이때까진 정말 상쾌하고 기분이 좋았다.
심지어 저 천왕봉 26km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을 보면서도 "얼마 안 되네~"
나중에 다음 포인트 0.4km라고 적혀있는 표지판을 보면서 "아직도 이렇게나 많이 남았어!!" 라고 절규하게 될 걸 이 때 알았더라면 그냥 거꾸로 하산했을지도 모르지. ^^
그 땐 미처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사진을 보니 무려 '장엄한' 이라고 수식이 되어 있다. 그렇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나와 지환형님의 산행은 '장엄한 종주'였던 것이다.
곰이 나온다는 플랙카드를 발견하고 나서 신기하다고 찍은 사진. 하지만 이후로 지겨울 정도로 보게 될 줄이야;;; 곰 출현시 주의사항 뭐 이런게 적힌 플랙카드도 있다. 신나서, 곰 안나오나 열심히 살펴보며 다녔었는데 결국 한마리도 못 만났다.
한 번 만났으면 싶기도 했으나, 중간에 지형과 나무가 마치 곰이 드러누워있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정말 순간적으로 너무 놀래서 몸이 굳더라. -_- 죽은 척이니 친구를 버리고 나무 위로 올라가느니 다 소용없다. 곰은 역시 안 만나는게 상책인 듯.
바윗덩어리가 하나 놓여있고 이쪽, 저쪽은 서로 감정적으로 반목한다. 그러나 경계는 모호하고 지역간 차이도 느낄 수 없다. 산은 그냥 산이고, 인간이 만든 경계는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참 묵직하게 다가온다... 고 쓰고 넘어가고 싶은데, 실은 이건 지금의 감상이고 그 당시엔 힘도 들고 비가 갑자기 많이 쏟아지기 시작해서 무슨 생각이고 자시고를 할 겨를이 없었다.
능선에 너른 들판이 잠시 펼쳐져 있다. 저 설명을 보면 알겠지만 예전엔 이곳이 시장이었다고 한다!!! 이럴수가! 먹고 사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고단하기 짝이 없구나.
지리산 종주의 최대 난코스인 저 대왕바위를 밧줄타고 기어오르기 전에 한 컷트 찰칵! 바위가 너무 커서 사진에 한 2/3밖에 안 들어오는구나;
(실은 위 멘트는 뻥이다. 저걸 어떻게 기어오르냐;; 바위를 돌아서 간다. -_-)
저 멀리 대피소가 보이면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런 생각이 든다. '이제 살았구나!'
세석에서 1박하고 다음날 4시쯤 일어나 4시 50분쯤에 길을 나섰다.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긴 무리고,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 기다리는 중. 심심해서 사진 찍으며 놀다.
하지만 구름이 워낙 많이 껴서 시간이 됐는데도 해는 커녕, 해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이라고 해야하나... 조금 더 가니 그야말로 장관이 펼쳐졌다. 구름 바다라는 말이 정말 딱 들어맞는 저 신령한 산자락의 기운을 보라.
옛 사람들이 왜 산에 신선이 산다고 생각했는지 알듯한 광경이었다. 옆을 지나던 한 할아버지께서 "이제야 한 번 보여 주시네."라고 말씀하시며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여러분은 이런 광경을 때맞춰 볼 수 있는 거라고 하셨는데, 뭐... 내가 좋은 일을 그리 많이 하고 산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튼 운이 좋았다.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저런 장관을 볼 수 있는거라면 난 완전 빚진 셈인데;;; (갑자기 식은 땀이 ㆀ)
사진으로는 자연의 압도적인 절경을 결코 담아낼 수가 없단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실제로 보면 저거랑은 비교가 안 돼요. ㅠ.ㅠ
아깐 안 보이던 해도 때마침 나타나 주시고.
연하봉 가기 전. 능선길이 참 아름답다.
갑자기 내려오는 길 사진으로 확 넘어와서 죄송하다. ㅎㅎ 내려오는 길은 중산리 쪽을 택했는데 이런 계곡이 끝까지 이어진다. 계곡 또한 매우 장관인데 문제는 저런 돌 길이 내려가기에 그리 만만치가 않다는 것.
내려오는 길에 갑자기 날씨가 바뀌면서 폭우가 쏟아졌는데 계곡에 물이 불어 시원하고 보기는 좋았던 반면, 미끄러워서 마지막까지 고생했다. ㅠ.ㅠ 결국 우리가 다 내려오고 얼마 안 있어서 싸이렌이 울리며 입산, 하산 통제되었다고.
이 폭포 이름이 뭐였더라? -_- 이거 머리가 너무 나빠서;;; 물이 불어나서 그런지 정말 장관이었다. 실제로 저거보다 훨씬 큰데 사진에선 좀 작아보이네. 제주도에 있는 폭포들을 제외하고는 규모면에서 남한에서 제일 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큰 폭포였다.
다 내려오자마자 입구에 있는 민박집 겸 식당에서 밥을 먹고 막걸리를 한 사발 마셨다. 크하~ 그런 꿀술은 정말 내 생애 처음이었던 듯. 지금 그 당시를 떠올려봐도 정말 황홀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명심하셔야 할 것은 입구에 있는 그 식당에 김치전은 안 판다는 것. -_- 그리고 내려오는 길에 지환형님과 나에게 파스도 뿌려주시고 먹을 것도 나눠주셨던 아주 천사같은 아주머니께서 중산리에 가면 찜질방이 있다고 들었다고 하셨는데...
없었다. ㅠ.ㅠ 입구 관리사무소에 물어보니 근방에서 가장 가까운 찜질방이나 사우나가 40분 거리에 있다고.. orz (결국 진주로 나와서 사우나를 갈 수 밖에 없었다. ㅎㅎ)
이상으로 지리산행기를 마칠까 한다.
그리고 다음 번엔 오랜만에 북한산에 한번 올라보려한다. 산행 중에 만나 우리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셨던 해리포터 아저씨(일명 천사아저씨 : 블로그 해리포터의 산 이야기) 께서 지리산 종주를 한번 쎄게 하고 나면 다음에 다른 산에 갈 때는 훨씬 수월하고 몸이 좋아진 걸 느낄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그런지 얼른 시험해보고 싶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평소 산을 타는게 다이어트나 운동효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건 그간 내가 너무 편한 산만을 다녔기 때문이었다. 집에 돌아온 다음 날 거울 앞에 섰을 때 수척해진 내 뱃살을 보니... 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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