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記1

8월 5일부터 7일까지 1박 3일 일정으로 지리산에 다녀왔다.
부끄럽지만 아직까지 지리산 종주를 한번도 해본 일이 없었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가자고 이야기만 나누던, 지환이형과 이번에야말로 질러버리자며 의기투합하여 훌쩍 떠났다.

원래는 무난하게 2박 4일 일정을 짜봤으나 지환이형님의 "싸나이 아니냐~" 한마디에 일정을 하루 단축시켜 1박 3일로 변경하였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_-)

아래는 세부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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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보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나와 지환이형도 출발하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직접 걸어보면 죽음의 계획이다. ㅠ.ㅠ

아무튼 거의 저 계획대로 산행을 마쳤다. 벽소령쯤부터 난 왼쪽 무릎이 나갔고, 지환이형은 그 전부터 양쪽 무릎이 다 나가서 죽을 고생을 한 것만 빼면(?) 아주 기분 좋은 산행이었다. 계획은 빈틈이 별로 없으니 1박 3일 일정을 원하시는 분은 저걸 참고하시면 되겠다.

하!지!만!

저 계획보다 더 중요한, 꼭 명심하셔야 할 사항이 몇가지 있다.


첫번째, 아침을 든든히 먹어라. 저 계획대로 가려면 중간에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꽤 빠른 속도로 계속 걸어야 한다. 자연히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난 이번에 산에 가서 먹은게 바로 힘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7일날 아침은 계획엔 도시락을 사가는 걸로 되어있었지만 열차 출발시간이 너무 늦어 그 시간에 도시락을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달랑 삼각김밥 2개씩을 사갔는데...
처음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았지만 아침먹고 한 3시간정도 걷고 나니 삼도봉부터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연하천산장까지 가는 2시간은 정말 고역이었다. 물론 육포, 초콜렛바, 오이 등 중간에 먹을 걸 많이 싸갔지만 밥을 일단 적게 먹어놓으니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같은 현상이 세석산장 도착하기 전 선비샘부터도 나타났지만 점심을 좀 많이 먹었더니 전처럼 배고파서 힘든 건 좀 덜했다. (대신 무릎이 아파서 ㅠ.ㅠ) 아무튼 산에서는 밥을 많이 먹어야한다.

두번째, 장비를 확실히 챙겨라. 지리산에 갈때 꼭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가장 처음 이야기할 것은 바로 무릎보호대이다. 이번에 멋도 모르고 갔다가 정말 평생 절름발이가 될 뻔 했다. 지리산은 사람을 죽이는 험한 산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결코 만만하게 봐서 될 산이 아니다. 아무리 강철같은 관절을 가진 사람이라도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끊임없이 산길을 오르내리다보면 무릎이나 발목이 성치 않게 된다.
등산화로는 부족하다. 무릎보호대, 양손에 들 스태프, 등산용 양말(양말은 일반양말을 신고 그 위에 등산용 양말을 겹신는 것이 좋다), 뿌리는 파스, 맨소레담 로션, 다 챙겨야 한다. 기왕이면 등산용 깔창을 한벌 더 사서 깔 것도 권한다. 그리고 등산복이 괜히 있는게 아니다. 갈 때 내가 필요없다고 하는데도 부모님께서 기어이 아버지 등산복을 챙겨넣어주셨는데 확실히 편했다. 그 외에 지리산엔 비가 오락가락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레인커버, 판초우의 같은 것도 필요하다. 내가 갔을 때도 비가 꽤 내렸는데, 레인커버는 준비해갔지만 판초우의 대신 1회용 우의를 사갔더니 후회가 좀 되었다. 한두번 쓸 것도 아니니까 기왕이면 좋은 걸로 하나 구입해 두는게 좋을 듯.

세번째는 짐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난 이번에 대피소 예약을 못해서 비박(고상한 말로는 이렇고, 실제로는 노숙;;;)을 해야했기 때문에 두꺼운 침낭을 짊어지고 갔는데... 정말 무거워서 죽을 뻔했다. 내 왼쪽 무릎이 나간 이유의 80%는 아마 그 침낭일 것이다. (결국 비가 많이 와서 예약한 사람들이 안 오는 바람에 세석에선 무사히 잘 수 있었고 침낭은 전혀 필요가 없었다 ㅠ.ㅠ) 아무튼 여름엔 대피소 복도에서라도 자면 되니까 두꺼운 침낭, 두꺼운 옷 같은 건 전혀 필요가 없다. 그리고 먹을 것도 약간 부족하다 싶게 싸가는게 좋다. 어차피 대피소에서 왠만한 건 다 파니까 모자라면 사먹으면 된다. 약간 비싸긴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만큼 바가지도 아니니까 걱정은 마시라.

충고는 이 정도로 하고...

느낀 점을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산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실감했다. 산에서 뵌 분들은 나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나와 형님이 무릎이 아픈 걸 그냥 지나치질 못하시고 먼저 말을 걸어서 무릎보호대를 빌려주시고, 압박붕대를 그냥 주시고, 파스를 그냥 뿌려주시던 분들, 정말 지금도 감사해서 어찌해야할 줄을 모르겠다. 우리의 감사하는 말에 살면서 다른데서 갚으라며 씩 웃으시던 그 모습까지도...
이 포스팅을 빌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산행기를 꼭 써서 남겨놓아야겠다 싶었는데
이럭저럭 미루다가 더 미루면 다 까먹겠다 싶어서 아무 구상도 없이 쓰기 시작했더니 완전히 두서가 없다;;
여기 못 쓴 다른 내용들은 지환이형한테 사진을 받는대로 다시 한번 정리해서 포스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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